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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Mar 25. 2024

살아있는 사람의 달리기

잠원한강공원 러닝

서울살이 8년 차. 러닝 크루를 시작하며 서울이 달리기 좋은 도시라는 것을 8년 만에 알았다. 정기런의 첫 장소는 잠원 한강공원. 수많은 한강공원을 가봤지만 잠원 쪽은 처음이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해 집결지 근처에 서서 멍을 때렸다. 아직 칼바람에 패딩으로 중무장을 한 사람들. 


달릴 수 있는 거 맞나. 이렇게 추운데? 


약속 시간이 되자 크루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처음 참여인지, 어디서 왔는지 그런 것들을 묻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도착해 있다. 그리고 곧 준비운동이 시작된다. 러닝은 오로지 몸 하나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운동. 구석구석을 잘 스트레칭해주지 않으면 다치기 십상이다. 


7:00/1km 페이스로 호기롭게 시작된 달리기. 1km를 뛰니 금방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7:30 페이스로 조금 속도를 늦췄다. 눈앞엔 긴 도로, 그리고 내 양 옆엔 탁 트인 배경으로 한강과 빌딩이 보였다. 


나 살아있는 것 같아. 나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아.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가득히 들어왔을 때,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외침이 들렸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달리는 순간만큼은 오로지 앞만 보며 즐겁게 뛰었다. 최근 내가 가진 걱정이나 고민, 불안과 각종 부정적인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은 채. 한껏 환한 모습으로 잠수교 위를 달리는 나. 나는 살아 있었다. 

어느새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 몸, 빠르게 호흡하고 있는 입과 코, 발그레해진 얼굴... 그 모든 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의 입증이었다. 

.

.

.

나는 7:30 페이스의 마지막 주자로 들어갔다. 이건 크루원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달리기를 끝냈다는 의미다. 

모두가 하이파이브 자세를 취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봐요. 거 봐요. 되죠?  

리더님의 말을 뒤로하고 모두와 손뼉을 치던 순간, 희열이 온몸을 휘감쌌다. 


달리기는 참 인생 같네요. 

속도가 아니라 꾸준히 달리는 게 중요하다는 리더님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정말 열심히 출석하겠노라고 주먹을 쥐고 소리 내어 다짐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달리기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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