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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Mar 18. 2024

살기 위해 달리는 사람

왜 달리기를 시작했냐고요? 

달리기. 초등학교 운동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 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손등에 쿡- 찍어주는 도장. 공책과 색연필 같은 상품들. 안타깝게도 나는 달리기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매년 운동회에 꼭 포함된 반별 달리기는 썩 달가운 대상이 아니었다. 6년을 통틀어 제일 잘 달려본 것이 3등 정도였으니까. 


성인이 된 이후로도 달리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헬스장을 다니며 인터벌 러닝을 종종 하곤 했지만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지 달리기 자체에 엄청난 애정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종종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하는 날에 아 몰라- 하고 러닝머신 위를 냅다 달린 날을 제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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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소화되지 않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일, 처음 겪어보는 감정. 위로와 응원을 기꺼이 건네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었지만 결국 이 감정을 소화해 내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고, 그러기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몇 달 동안 나아지기 위해 고군분투를 했다. 평소 내가 들이는 노력이 10이라면 100 정도를 들였을 정도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자꾸만 무너져갔다. 어쩌면 나는 상황을 인정하고 감정을 잘 소화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모른척하고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이들에게 이런 내 모습을 들키고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마음이 곪을 대로 곪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달려야겠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달리고 봐야겠다고.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그리 잘 달리는 것도 아니지만. 최대한 숨차고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근육이 쌓이리라고 믿고 싶었다. 


달려야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 바로 러닝 크루에 가입했다. 매주 모르는 사람들과 서울 도시 곳곳을 달리는 그런. 처음으로 크루 사람들과 러닝 후 식사를 하게 된 날, 리더님이 물었다. 왜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느냐고. 나는 아.. 평소에 좋아하고 열심히 하던 웨이트에 슬럼프가 와서요.. 다른 운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라고 대답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이었다. 


웨이트에 슬럼프가 온 건 사실이었지만, 나는 잘 살고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흘러넘치는 감정을 주워 담다 체하는 것이 아니라 잘 소화하기 위해서. 눈앞에 놓인 상황을 인정하고 쉽지 않더라도 웃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2024년 3월, 그렇게 나는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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