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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Apr 01. 2024

도시를 달리는 사람들

경복궁 러닝 

광화문과 경복궁은 내게 특별한 장소다.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광화문 교보를 시작으로 서촌 혹은 북촌까지 쭉 걷다 보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곤 했다. 무엇보다도 대학을 다니며 친구들과의 시간을 거의 이 일대에서 보냈다. 어느 밥집이 맛있고 그 디저트가 어느 카페의 것인지. 새로 생긴 독립서점은 어디에 위치하는지. 줄줄 꽤고 있을 정도였다. 


그냥 이상하게 광화문만 오면 기분이 좋아져. 

서촌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야. 


서울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내가 꼭 하곤 했던 말. 그래서일까. 2주 차 정기런 장소가 경복궁임을 알았을 때 마음이 유독 설렜다. 지도를 찾아보지 않아도 꽤고 있는 장소를 달린다니. 


광화문 바로 앞에서 시작된 달리기는 통의동 보안여관을 지나 경복궁 한 바퀴를 쭉 돌고, 국립현대미술관 앞에서 잠깐의 휴식 후 또 달리는 코스였다. 바닥이 고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냅다 달렸다. 익숙한 이 거리들을 이렇게 행복하게 달리게 될 줄 스무 살의 나는 알았을까?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지난주보다 더 잘 달리는 것 같은데요? 

M님은 지난주 호기롭게 시작했던 7:00/km 페이스에서 뒤처졌던 나를 보았던 분. 머쓱하게 웃었지만 이 한마디에 하늘을 나는 것 같던 기분이 정점을 찍었다.

.

잠깐의 휴식 후 다시 시작된 달리기는 자신의 페이스에 맞게 자유롭게 달리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때다 싶은 것처럼 재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사람은 조금의 재정비 시간을 가진다. 각자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갤러리가 즐비한 삼청동 거리를 지나고, 풍년쌀농산을 지나면 나오는 언덕. 오르막길에서 대부분 고비가 온다. 참 이마저도 인생과 닮았다, 달리기는. 


나: 언니 나 두고 먼저 가... 

B 언니: 아니 같이 가 다 왔어 조금만 더! 


어느새 단짝이 되어버린 B언니가 계속해서 뒤를 돌아봐준 덕분에, 고비를 넘기고 크루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북촌의 하늘 위로 떠있는 손톱만 한 달과 저 멀리의 남산타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서울이라는 도시가, 새삼 멋진 도시였다는 걸 깨닫는다. 한때는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도시였지만 살아보니 너무 잿빛 같았던 도시, 서울이 달리기 덕분에 조금씩 좋아진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이날 보았던 광화문 현판의 글처럼. 겨우내 얼어버렸던 마음에도 조금씩 꽃이 피어나고 있음을, 도시를 달리며 나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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