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 이야기
새벽 4시 30분에 눈을 떴다. 평소의 주말이라면 한참을 자고 있었을 시간이지만, 오늘은 러닝크루에 큰 행사가 있는 날. 바로 마라톤이 열리는 날이다. 나는 마라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사람이지만, 웃기게도 고등학교 때 버킷리스트에 마라톤 참가하기가 있었다. (그것도 '남자친구랑 같이'라는 부재와 함께.)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버킷리스트가 크루 활동을 하며 불쑥 떠올랐다. 한참을 갈까 말까 망설였던 응원을 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어린 시절의 버킷리스트가 떠올라서였다. 마라톤은 대체 어떤 분위기인지 그 열기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잠실에 있는 종합운동장까지 모이기로 한 시간은 새벽 6시 30분. 새벽 어스름에 가장 먼저 도착해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크루원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커다란 깃발을 가지고 오신 응원단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10KM 주자로 나가는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테이핑을 하거나, 신발끈을 동여매거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각자의 방법으로 출발 전 점검을 하는 사람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모두를 감싸고 있었다.
.
.
출발 신호와 함께 무섭게 달려 나가는 사람들. 세상 사람들 나 빼고 다 마라톤 참가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각 구역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 혼자 참가한 사람,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사람, 피카츄나 꿀벌 복장을 하고 뛰는 사람, 유모차를 이끄며 뛰는 사람까지...
몇 안 되는 우리 10KM 응원팀은 코너를 도는 부근에서 응원을 시작해, 포인트를 이동해 주자들이 돌아오는 방향에서 응원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파이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 저 멀리서 크루원들의 모습이 보이면 더 큰 목소리로 목청껏 이름을 불렀다.
10km를 처음으로 완주한 분은 외국인이었다. 그가 혼자 텅 빈 도로를 달려오는 모습을 나는 멍하니, 그러나 무수한 생각을 품은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 저렇게까지 달리는 걸까. 무슨 이유로 자신의 한계 혹은 그 이상에까지 도전하는 걸까.
너무나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달리기. 그런 달리기의 최고점이라 불리는 마라톤에 참가한 사람들의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은 풀 주자들을 응원하며 더욱 커져만 갔다. 잠실대교 위 풀 주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달리는데 중요한 건 없구나. 그냥 달리는 거야. 앞만 보고.
간혹 통증으로 뛰는 걸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간절함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크루원분들 중에서는 3시간 안에 풀을 완주한 분도,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 분도 있었다. 기록과는 상관없이, 달리기 새내기의 눈에는 참가한 모든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일단 달렸다는 거. 그게 중요한 거잖아.
.
.
.
시끌벅적 뒤풀이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고 피곤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늦게까지 들뜨고 설레는 마음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써 내려갔던 그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될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고, 올해 이루고 싶은 또 다른 목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일단 등록하는 거예요. 10KM 나가잖아요? 그럼 하프 욕심이 또 나요. 그러다가 또 풀을 나가는 거예요.
올해 나가는 거야. 충분히 하고도 남아.
기분 좋은 마라톤 세뇌(?)로 물들었던 하루 끝. 그렇게 나는 11월 마라톤 접수를 노리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