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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May 06. 2024

처음으로 10KM를 달리다

나의 첫 LSD 러닝 

어느 날, 크루원들 중 일부가 모인 LSD 방에 초대되었다. LSD는 Long Slow Distance의 약자로, 심박수를 낮게 유지하며 장거리를 달리는 훈련 방법을 말한다. 


저... 나가도 되나요....? ^^ 


방에 초대된 지 1분도 채 안된 내가 꺼낸 말. 그도 그럴게 모두가 나보다 잘 달리는 멤버들이었고, 나는 그중 페이스가 가장 느린 데다 길게 뛰어본 경험이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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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M로 조절 가능하십니다. 

6:30 페이스도 가능합니다. LSD니까요. 


음.. 6:30 페이스로 올린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 자리를 빌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 주 월요일부터 여의도의 유명한 콩국수집의 콩국수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러닝도 러닝이지만 그 후의 식사가 너무나 기대됐다. 


저 참석할게요! 그렇게 콩국수를 목적(?)으로 저질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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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D가 열리는 날, 주최자인 R님을 비롯하여 A님 그리고 나까지 모두 약속시간보다 일찍 지하철 역에 도착해 있었다. T님은 아직 오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진심인 사람들만 남은 겁니다. 

R님의 발언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개인적으로 크루원들 분들 중에서 나는 R님과 A님의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를 진심으로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과 함께 소중한 주말 아침잠을 포기하고 자체적으로 LSD를 하러 나오다니. 한 번도 길게 달려본 적도 없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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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비트와 함께 6:30으로 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발목이 아파왔다. 몇 주 전부터 아파온 발목이 자꾸만 속도를 늦췄다. R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먼저 가세요! 


민폐가 되기 싫었기에 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전날 거의 잠을 못 잔 T님도 나와 같이 천천히 달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10KM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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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0 페이스로 달리면서 T님과 나는 그야말로 수다쟁이가 되었다. 커리어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지난한 연애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렇지, 원래 이런 이야기가 재밌는 법이지. 가끔은 아주 오랜 안 사람과의  대화보다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과의 가벼운 대화가 환기가 되기도 한다. 이날의 대화가 유독 그랬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달린 거리가 훌쩍 늘어있었다. 


물론 중간에 멈추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발목이 아파오고, 숨은 차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시작했지 싶은 생각도 아주 잠깐 들었다. 하지만 즐거운 대화와 나를 북돋아주는 T님, 그리고 초록빛으로 가득한 여의도의 풍경이 나를 앞으로 앞으로 계속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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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걱정했었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내가 걱정은 떨쳐버리고 재미나게 달리고 있을 사이, R님과 A님은 나를 한참 걱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분의 걱정과는 달리 이날의 러닝은 손에 꼽힐 만큼 의미 있고 즐거운 달리기였다. 


쉬지 않고 10KM를 달린 소감은? 나 좀 멋지다! 


살면서 얻는 성취감이 점점 줄어들었던 타이밍에 시작한 달리기는, 조금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스스로를 큰 사람으로 만든다. 여의도의 울창한 나무들처럼.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내 세상도 넓어지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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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달리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을 무렵, 11월 JTBC 마라톤 전, 다른 대회에서 10KM를 한번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신청한 롱기스트 런. 이 글을 쓰는 시점에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회. 페이스도 근지구력도, 퍼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 가려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시점 나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되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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