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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May 27. 2024

나의 첫 10K

롱기스트런 in 여의도

먼저가 먼저!


대회를 2주 남겨둔 시점,  B 언니와 T오빠와 함께 LSD 연습을 하면서 계속 훠이훠이 손을 저어야 했다. 석촌 호수에서도, 여의도에서도. 한참을 뒤쳐져서 긴 거리를 홀로 뛰었다. 같이 뛰는 사람이 없으니 7-8KM쯤 되면 멈추고 싶다는 유혹이 자꾸만 들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뛰는 거지 싶으면서도 저 앞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려주는 언니오빠를 보면 멈출 수 없었다.


뒤로 갈수록 떨어지는 페이스. 무거워지는 몸과 아파오는 발목... 대회에서도 고독런이겠구나.

그렇게 단념하고 있던 내게, 손을 내밀어준 건 A 오빠. 나보다 훨씬 잘 달리는 사람이면서, 먼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해 주었다.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등장하겠다며 날 곤란하게 했지만...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입고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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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동아 마라톤에서 뛰는 크루원들을 보며 언젠가 주로에서의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주로를 뛸 기회. 기록 욕심보다는 즐기는 게 목표였다. 대회 전날까지도 발목이 아팠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크루 사람들도 있고 평소 연습을 같이 하던 친한 사람들이 함께 달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고 편했다.


양 옆에 큰 오빠 A, 작은 오빠 T를 사이에 두고 스타트를 끊었다. 평소 연습한 대로 7:00/KM 페이스에서 떨어지지 않기만 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분위기를 탄 탓인지 초반부터 신나게 달렸다. 발목 아픈 것도 잊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주로에서 어떻게 달렸는지 정확히 기억이 잘 안 난다. T 오빠를 먼저 보내고,  A 오빠와 서로 페이스를 체크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던 기억 밖에는 (그만큼 달리느라 무아지경이었다는 이야기).


평지에서는 웬만하면 평소 페이스보다 빠르게 달리고, 업힐에서는 속도를 조금 늦춰 달렸다. 생각보다 업힐이 자주 등장해서 속으로 으악을 외치며. 서강대교 업힐을 올라오면서는 심박수가 190 이상을 찍더니 순간 눈앞이 흐려졌다. 아득해졌지만 살살 조절해 나가면서 끝까지 달렸다.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다 왔다고 외치는 A오빠의 목소리를 벗 삼아.


원래 대교에서 사진이 잘 나와.

A 오빠는 앞으로 우다다 먼저 달려 나가서는, 주로에서의 내 모습을 한가득 담아줬다. 첫 대회라고 마음을 많이 써준 사람. 덕분에 더 신나게 즐기면서 달렸다. 달리면서 같이 노래도 부르고. 막판에 지칠 때쯤엔 센스 있게 잔나비 노래까지 틀어줘서 숨이 차는 데도 따라 부르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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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파이팅을 외치는 러너들. 크루티를 알아보고 저 멀리서 응원을 건네는 사람들. 긴장보다는 달뜬 분위기. 힘들다는 생각보다 더 앞서는 행복하고 신나는 마음.


이래서 대회 나오는 거구나. 이런 기분이구나.


3월에 참 궁금했던 감정들. 왜 저렇게까지 달릴까 싶었던 궁금증들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LSD 연습할 땐 7KM가 넘어가면 한계에 부딪혀 페이스가 점점 느려지곤 했는데, 무슨 일인지 이날은 최대한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었고 생각보다 빠르게 피니시 라인을 밟을 수 있었다.

1시간 4분 35초의 기록으로.


어쩌면 피니시 라인을 밟는 순간 눈물이 찔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부끄럽지만 그랬다. 마음이 정말 힘들었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시작한 달리기였기에. 남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밟는 피니시 라인이 내겐 더욱 벅찰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웃으면서 달렸다. A오빠가 남겨준 영상에서도, J님이 남겨준 사진에서도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넌 충분히 잘 해냈다고. 앞으론 더 웃을 일만 가득할 거라고.

그 모든 것들이 지나온 시간들의 증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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