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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ligitis Oct 08. 2020

세렌디피티

 가나안 성도, 크리스천이지만 교회에는 가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절망감에 간절히 신에게 매달리고 큰 은혜도 받았지만 사람들에게 질려 부활절 예배를 마지막으로 섬기던 교회를 떠났다. 마지막 사랑을 실천하려 이웃의 허물을 따지지 않았다. 판단하고 벌하는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기에 오롯이 신의 심판에 맡기기로 했다. 나는 한없이 잔인했던 그들을 잊기로 했다. 그리고 낯선 분야로 커리어를 전향해 아무도 모르는 이곳 서울로 왔다.


 악몽을 꾸었다. 눈을 떠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냉동실에 얼려둔 나가사키 카스텔라와 아메리카노로 아침을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산 식료품은 방사능 범벅이라 멀리하고 있지만 달걀 한 판이 들어간 노랗고 묵직한 카스텔라는 먹다가 피폭되어도 괜찮을 만큼 녹진하고 달콤한 맛이다. 잠시 행복함에 취했다가 초파리 생각에 서재로 갔다. 간밤에 시큼한 냄새가 가셨을까? 줄을 맞춰서 세워둔 터라 한눈에 파악이 쉬웠다. 그런데 이상하다. 따로 모아둔 네 마리가 없어졌다. 가벼워 문을 여닫는 바람에 날아갔나 싶어서 바닥을 살펴봤는데 먼지 하나 없다. 초파리가 어딜 갔을까? 취해서 잘못 세었나? 그럴 리 없는데... 와인은 분명 셈을 다 끝내고 마셨는데. 초식남에 연락을 할까? 연휴 동안에 습기 찬 냉동 초파리를 펼쳐 자연 건조하면서 생각해보자.


 올해도 추석 연휴는 근무의 연장이었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아쉬운 건 대표뿐이니 24시간 항시 대기다. 북미나 유럽 쪽 프로젝트는 시차 때문에 자정이 가깝거나 새벽에 화상으로 회의가 진행된다. 때문에 편한 파자마를 입어도 상의는 늘 차려입고 있는다. 집 나간 지 여섯 달만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화상통화를 띄워보니 나파밸리에서 포도를 수확하느라 바빴단다. 코로나로 인류의 삶이 퇴행할 수도 있구나 얼핏 생각이 들었다. 샤인 머스캣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저 남자, 오늘따라 낯설어 보이는 저 남자와의 결혼은 돈으로 산 것이나 다름없었다. 집안의 기대주였던 친오빠가 갑작스레 한정치산자로 전락하면서 서른을 넘기기 전에 결혼을 해야 유산을 받을 수 있었기에 통장을 보여주면서 청혼을 했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금발에 쌍꺼풀까지... DNA로만 보면 밑지는 거래는 아니었다. 싫은 것은 아니지만 같이 살아보니 가족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너무 재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형식적인 말로 통화를 종료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초파리 사진과 함께 초식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이벤트 당첨되었던 김연선입니다. 여자 친구와 연휴는 잘 보냈나요? 다름이 아니라 초파리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정확하게 몇 마리 담았는지 기억하는지요? 냉동했다가 살아나기도 하는지요? 한 마리씩 100열 종대로 세워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네 마리가 사라졌습니다. ”


“초파리는 무게로 달아 넣어서 크기에 따라 개체수의 오차가 있습니다. 생명체를 급속 냉동했다가 살아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학계에 보고된 적은 있는데,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만일 살아났다면 짝짓기를 할 것이고 이틀 뒤 알을 낳습니다. 25도 실온에서 2주 후 성충이 될 것입니다. 한 마리 한 마리 터치하며 관찰하셨다니 드디어 초파리와 사랑에 빠지셨군요!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호박 꽃만두 덕분에 여자 친구에게 칭찬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선님!”


 초식남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나는 너에게로 가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그나저나 가정집에 곤충을 풀었으니 세스코를 불러야 하나 고민하다가, 초파리는 해충이 아니니까 그냥 두기로 했다. 과일을 잠시 방치해두면 몇 킬로 떨어진 거리에서도 날아와 윙윙거리는 것이 초파리이다. 다음 2주가 고비라는데 길어야 두 달을 사는 개체들이다. 남은 초파리는 레진에 넣어 앰버에 박제된 아름다운 곤충 보석을 만들어야지. 초식남에게 감사의 뜻으로 팔찌를 만들어 조공이나 하려고 생각했다.

 


 정신없이 2주가 지나고 10월 중순이 되었다. 우려했던 것처럼 집안에 초파리가 들끓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신기한 일이 생겼는데 초파리 네 마리가 없어졌던 빈자리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생겼다. 자세히 보니 투명하고 빨갛고 단단한 것이 원석 같았다. 조심스럽게 담아 감정을 의뢰하러 동네 보석상에 들렀다. 조명 아래서 이리저리 한참을 보고, 특수 기계가 있는 안쪽을 들락날락하더니 보석상 주인이 물었다.


"이것들 어디에서 구하셨어요?"

"실험실에서 만들었는데 무엇인지 궁금해서 가져왔어요."

"루비예요. 0.1 캐럿 정도인데 흠집과 불순물이 전혀 없어요. 스피넬이나 레드 사파이어인 줄 알았는데 분광 분석을 해보니 루비네요. 인공인데 어쩌면 이렇게 색이 쨍하게 잘 나왔는지 레이저를 쏠 정도로 순정에 가깝게 만들었어요. 파실 생각 있으세요? 원하시는 가격 쳐드릴 수 있는데."

"아... 아니요. 아직은 실험 중이라 더 많이 만들면 팔게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정서를 챙겨서 얼른 루비 네 조각을 담아 보석상을 나왔다. 아니 루비가 왜 거기서 나와? 초파리에 접근한 사람은 나 말고 없는데 무슨 일이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지 않는 한 루비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2주 전 초파리를 가져왔는데 네 마리가 사라졌다가 루비로 나타났다면 누가 그 말을 믿겠느냐고. 가만있어봐, 초파리는 다리도 있고 날개도 있네! 가장 수상한 녀석들이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일단 진정하고 초식남에게 연락을 하자. 이상한 사람 취급이나 하지 않을는지 걱정이 앞섰다.


"제민님, 오랜만입니다.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서 연락드려요. 지난 2주간 집안이 초파리 소굴이 될까 봐 마음 졸였습니다. 다행히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잃어버린 줄 알았던 초파리가 있던 자리에서 2-3mm 정도의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초파리 눈 색깔하고 같습니다 혹시 3주년 선물로 주신 초파리들이 돌연변이인가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연선 올림"


"연선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사진과 메일 확인했습니다. 정말 신기하네요! 천 마리는 그대로인데 사라졌던 네 마리가 2주 만에 반짝이는 무언가로 돌아왔다고요? 학부시절부터 10년 간 초파리를 돌보았는데 이런 사건은 처음입니다. 제가 드린 초파리는 돌연변이가 아닌 자연산입니다. 사진으로 얼핏 보니 루비처럼 보이는데요! 연선님이 마법을 부린 것일까요? 이거 마술사로 체면이 말이 아닌데요, 대체 어떻게 하신 건가요? 팬이 아니라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제민 올림"


 팩트를 이야기했는데 픽션으로 받다니 과연 초식남은 멋진 구석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제민은 과학자이기 이전에 아마추어 마술사이기도 하다. 미친 사람 취급을 할 수도 있었는데 나의 이야기를 믿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이제 어떻게 하지. 마땅히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아 연락두절을 하며 잠수를 탔다. 그런데 11월이 되자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 큰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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