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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yg Oct 07. 2020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젠장! 마흔이 넘어보니 좋은 것이 하나 없다. 기초대사량이 떨어져 팔뚝, 허리둘레에는 잡지책처럼 살이 잡히고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해져서 에센스를 퍼붓지 않을 수 없다. 엄마들이 괜히 잘 풀리지 않게 파마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노안이 시작되었는지 스마트폰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고, 날렵하던 턱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해 쳐지기 시작했다. 생식력은 곤두박질쳐 인공수정이 아니면 자연임신이 될 확률이 한 자리로 떨어졌다. 스킨십도 귀찮고 이성에게 성적인 호기심조차 가지 않는다. 누가 중년이 되면 품위가 있고 여유가 생긴다고 했던가. 이 엄청난 노화의 비밀을 가급적이면 은폐하고 숨기고 싶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내 어릴 적 꿈은 하루빨리 마흔이 되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상형은 연예인이 아닌 선생님이었다. 무엇이든 알고 계실 것 같은 마흔 살 선생님이 그렇게 멋질 수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또래들과 연애를 하기보다 교수님들을 연모하며 가깝게 지냈다. 안정적이고, 의지할 수 있고, 대화도 잘 통했다. 청춘이 영원할 줄로 착각했던 삼십 대에도 하루빨리 마흔이 되기를 바라고 또 기다렸다. 컬러로 치자면 원색처럼 생동감 있거나 파스텔톤처럼 화사하지는 않지만 그레이가 더해져 톤 다운된 고급스러운 느낌이랄까.


 2020년 세상을 뒤집는 사건이 발생했다. 코로나 19로 팬데믹이 선포되면서 마이너리티가 주류로 부상했다. 비대면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집합 금지로 파티퀸은 자취를 감추더니 온라인 강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거나 싸움 잘하는 사람이 우세한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덕후 취급받던 크리에이터 군단이 팬덤 문화를 이끌었다. 각국에서 경기부양책으로 현금을 지나치게 풀어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물건이 귀해졌다. 수중에 돈이 있어도 물건을 구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정부는 기본소득과 디지털 민주주의 법안을 통과시키기에 이른다. 변하지 않는 지식에 모든 가치를 걸고 살아온 내 인생은 망한 듯했다. 15년을 함께 한 남편도 비슷하게 권태기가 온 것일까? 어느 날 남편이 폭탄선언을 했다. 우린 자녀도 없고 앞으로 2세 계획도 없으니 당분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잠시 떨어져 지내자고 말이다. 매사에 흑과 백으로 선긋기를 좋아하는 나는 이혼을 원했다. 하지만 남편은 외교관이라 대외적으로 위험이 수반되는 선택은 절대 하지 않았다. 한국의 코로나 발생자가 최고점을 찍던 날, 그는 조용히 짐을 싸더니 본국으로 가버렸다. '그래, 넌 처음부터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무장한 아메리칸이었지.' 아, 이 상황이 꿈이라면 좋으련만 며칠을 자고 일어나도 옆자리는 허전하고 안개가 낀 듯 미래는 불안했다. 우울할 때엔 습관처럼 유튜브에 접속해 구독 중인 업데이트 영상을 몰아 몇 시간씩 시청한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하면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로 2만 명 구독자를 거느린 <초. 식. 남. TV>는 28살 박사 연구원이 운영하는 채널이다. 마술사 출신으로 이번 생에 졸업논문은 물 건너갔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엉뚱함이 좋아 차음에는 팬심으로 댓글을 남겼는데 상냥하고 지적인 모습에 매료되어 늦깎이 열혈 구독자가 되었다. 그의 채널명은 '초파리와 식충식물 키우는 남자'의 줄임말로 랩실 일상을 브이로그로 보여준다. 가끔 초파리 돌연변이를 만드는 실험도 라이브로 보여주는데 이 험한 세상에 현실감각이 없어 보여 내 자식 같은 연민의 감정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빅데이터 플랫폼과 분석 툴을 개발하는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팬이란 이유 없이 대가가 없어도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던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우린 서로의 머릿속에 몇 번을 들어갔다가 왔다고 해도 믿을 만큼 대화가 잘 통했다. 그가 평소 두꺼운 안경을 쓰고 방송을 찍을 때에 렌즈를 착용한다든가, 유정란을 부화시켜 집에서 몇 달 동안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후라이드 치킨을 만들어서 먹었다는 에피소드는 이미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이번엔 3주년 기념이라 미니 게임을 하나 만들어서 헌정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계획한 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계획에 없던 빅 사건이 생겼다. 초식남 TV 3주년 기념으로 사연을 신청하면 냉동 건조 초파리 천 마리를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한단다. 우주선에 인간보다 많이 탑승한 작은 생명체, 우리가 아는 더러운 쇠파리나 말파리와는 다른 종으로, 향기로운 과일을 먹고사는 노랑초파리 (drosophila melanogaster)를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몸통은 반투명한 엠버 같고 반짝이는 눈은 흡사 루비 같았다. 내 생활에 딱히 쓸모는 없겠지만 가까이 두고 관찰하고 싶었다. 그런데 신청자가 없었는지 내가 당첨이 된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라 택배가 안돼 초식남이 직접 들고 와서 전해준다고 한다. 성덕이 되는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살아있는 것에 공포가 있다. -197도의 액체 질소로 냉동했다니 깨어나 펄펄 날아다니지는 않겠지? 과학을 좋아했지만 전공을 바꾼 것은 생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초식남과 만나기로 한 날은 추석 연휴 전 날이었다. 마침 마당에는 호박꽃이 주렁주렁 열려 만두를 빚고 있었는데 멀리서 오는 만큼 손수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다. 일 년 중 이때에만 먹을 수 있는 호박꽃 튀김과 호박꽃 만두를 가득 만들어 푸짐하게 준비했다. 오후 5시 벨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당첨 축하드려요!”

“아... 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 나누지요.”

“그런데 추석인데 가족분들은 다 어디 가셨나요?”

“남편은 일이 있어 (바다 건너서) 외출했고 아이는 없습니다.”

“저도 여자 친구가 있는데 잠시 놔두고 왔습니다.”

“ 아... 네. (안 물어봤는데요...)”


방송에서는 말을 잘하더니 낯을 가리는 모양이다. 남의 집에서 무안해할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이벤트 신청자가 많이 없었나 봐요. 제가 이런 거 당첨이 잘 안되는데...”

“30:1의 경쟁률이었어요. 전산학과 친구가 추첨 프로그램을 만들어 공정하게 뽑았습니다.”

“와! 정말요? 그렇다면 기분이 좋아지는데요!”

“앞으로도 이런 특별한 선물 받으실 기회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 초파리로 연구하시는 거예요? 작아도 너무 작잖아요...”

“눈에 보이는 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쓰임이 있어 태어났고. 초파리를 연구해서 불치병을 치료한다든가,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에 보내기도 합니다. 막중한 책임을 지고 말이지요.”

“크리스천이신가 봐요. 인간의 불치병을 치료한다면 의대를 갈 수도 있는데 왜 과학을 택한 거예요?”

“기초과학이 중요한데 모두 다 의사가 되겠다고 외면하면 안 되니까요.”

“그럼 방송은 왜 시작하신 거예요? 연구에 매진해도 논문 쓸 시간이 부족할 텐데...”


긴장해서 그만 말실수를 했다. 본인도 아는 사실일 텐데 나도 모르게 약점을 찔러버렸다. 


“취조하듯 물어서 미안해요. 내 학창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방송을 보면서 늘 몰입했어요.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 이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인기에 연연해서 학문을 포기한다니 화가 나고 슬펐어요.”

“사랑하는 것에 인생을 거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인가요?”

“살아보니 영원할 것 같은 관계도 변하더군요. 본능에 불과할 뿐이죠.”

“생명과학자로서 한 말씀드리자면 본능조차도 신이 설계해놓은 위대한 프로그래밍이라 생각합니다. 유전자를 보전하려고 대를 잇는 행위가 어떻게 하찮은 일이죠?”  

“제가 자식이 없어 모르겠지만 세상 그 누구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인류에 대한 책임감을 떠올리지 않아요. 내 자식이니까 이기적으로 행동하지요. 동물적인 본능인데 위대한 일로 추앙될 수 없어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거라면 모를까요.”

“알겠습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언성을 높이고 싶지 않습니다. 여자 친구와 저녁 약속이 있어 일어나겠습니다. 초파리에 대해 궁금한 점 있으시면 쪽지 주세요. 초식남 채널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요즘 갱년기라 예민해져서 첫 만남을 망쳤네요. 호박꽃 만두하고 튀김 싸드릴 테니 여자 친구분과 같이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 시간도 안되어 초식남과 첫 만남이 허무하게 끝났다. 선물로 주고 간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개봉해보니 한 손에 잡히는 작은 바이얼에 든 초파리들이 보인다. 천 마리인데 많지 않았다. 컬러도 질감도 너무 생생하다. 냉동 질소로 얼렸으니까 잠자는 거야, 영원히 깨어나지는 않는 거다. 위아래로 몇 번 흔들다가 뚜껑을 열고 A4 종이에 쏟아보니 참깨처럼 알알이 흘러내린다. 과일을 먹다가 급습당했는지 시큼한 향이 난다. 육안으로 보니 진짜로 보석 같은 빨간 눈에 투명한 몸통, 그리고 방금 흔들어서 떨어져 오색으로 빛나는 날개도 있다. 얼어붙는 순간 추웠는지 다리가 웅크려져 있다. 꽁무니가 검은 수컷과 통통한 암컷이 섞여있다. 설마 쌍쌍이 짝을 맞춰 넣지는 않았겠지. 황금연휴라 할 일도 없고, 남편도 집에 없으니 핀셋으로 초파리를 세어보았다. 자정을 넘겨 새벽이 되어서야 셈을 마쳤다. 총 1004 마리다. 보너스인지 네 마리를 더 담아주었군. 줄줄이 세워 놓으니 무슨 군대 같다. 밀려드는 뿌듯함에 와인을 한 병 꺼내서 마시고 잠이 들었다. © Lisay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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