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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리스본을 사랑하는 이유

리스본의 겨울

by 영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가 오늘도 비가 오려나 싶었다.

리스본의 겨울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니 크게 춥거나 눈이 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잦은 비로 습하고 실내에선 으슬으슬 추운기가 돈다.

집안에 난방이 따로 없어서 난로를 켜놓지 않으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원래는 학교 가는 길에 일출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해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길래

하루 종일 좀 우울하겠거니 싶었다.

날씨에 따라서 기분이 좌지우지되는 걸 안 하려고 하지만

우중충한 하늘에 실내도 어둑어둑하면 기분이 마냥 짱 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날씨가 이런 날에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려고 하지만 발걸음이 막 신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어제와 같은 평온한 하루만 되기를,

아니면 어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실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아침 산책을 마치고 들어왔다.


우중충하고 흐린 날에는 당연히 커피다.

커피 향은 언제나 좋지만 흐린 날에는 더욱 좋아진다.

이런 날에는 두 잔은 기본으로 마셔줘야 한다.

평소 듣던 소리도 더 잘 들리고,

평소 마시던 커피 향도 더 진하게 느껴지는 그런 흐린 날.

이런 날은 사람이 간절히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냥 일상의 대화를 나눌 누군가.

계속 말을 걸면 귀찮다가도 없으면 허전한 그런 느낌.


커피를 마시고 빨래를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마구 걷히기 시작한다.

점점 밝아지더니 급기야 해가 나왔다.

어둑하던 실내는 다시금 환해지고 따스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리스본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이 그저 오늘 하루 내내 흐릴 줄만 알았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뜨고 나면 온 세상이 밝아진다.

바로 5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아름다운 하늘 풍경을 보여주는 때가 종종 있어서

리스본에서는 늘 모든 것이 예측불허가 된다.

지금 내가 볼품이 없다고 해서,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영원히 그러하리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어 줄 수 있는 반전이 준비된 도시랄까.

나는 그런 리스본이 좋다.

반전의 재미가 있고, 상상의 여지가 있는 도시.

다행히도 밝아진 하늘은 계속 쾌청함을 유지 중이다.

서둘러 빨래를 돌려서 창밖 빨랫줄에 내다 널었다.

상쾌한 바람에 빨래는 기분 좋게 말라가는 중이고

바람이 포근한 게 봄이 코앞에 온 듯하다.

이렇게 평온하게 계절이 또 온다.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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