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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

결국 인생은 선택이다

by 영오

살면서 제일 큰 선택은 아무래도 퇴사였던 것 같다. 23년간의 직장생활을 그만두었을 때 내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그동안의 신념, 라이프스타일, 주변의 기대, 인간관계 등 모든 것들이 변했다. 그럴 줄 알고 한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적응을 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특히 내 주변 사람들이 적응에 더 힘들어했다. 이제껏 살아왔던 방식에서 완전 다른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것에 더해서, 다른 이들의 충격까지 보듬어야 하는 이중고? 에 시달렸다. 그런 데다가 해외이민이라는 두 번째 선택을 감행한 것이다.

재밌는 게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는 수월하게 선택을 하게 된다. 이미 한번 일탈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 일탈이 큰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면 계속해서 더한 일들을 저지를 동력을 얻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인생의 결정을 내리고 나면 그 뒤에 따라오는 것은 끊임없는 과거와의 비교이다.

나 스스로도 그렇고, 타인들도 그렇다. 과거에는 이랬는데 지금은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나를 뒤흔든다. 나는 앞으로만 나아가고 싶지만 주변은 나를 가만 두지 않는다. 특히 상황이 안 좋아지면 모두들 나의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확정하고자 작정을 한 사람들처럼 한 목소리로 걱정을 늘어놓는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나에 대한 애정 때문이겠지만 그걸 당하는 사람은 역시나 두배로 힘들어진다. 이미 나 스스로도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데 거기다 대고서 잘했네 못했네를 따지는 말을 하는 것은 아무리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도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람은 늘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그 과거에도 늘 불안과 걱정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지금과 비교를 하면 그때는 그저 아름답고 평온했던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럼 이쯤에서 슬슬 나오는 레퍼토리가 있다. '그러게, 네가 좀 더 참았어야지.'

그런가. 내가 인내심이 부족했던 걸까? 인생을 너무 쉽게 봤던 걸까? 내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너무도 큰 일을 저질러 버린 걸까? 세상은 늘 나에게 이런 생각에 굴복하도록 은근한 강요를 한다.

내가 한 선택은 그토록 무모하고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듯이.



내가 해외이민을 선택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남들과는 좀 다른 삶, 그리고 아이를 다른 시스템 속에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소망.

내가 원했던 것은 그 두 가지이고 지금까지는 꽤 만족스럽게 이민생활을 하고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모두가 바라는 삶을 꼭 따라가지 않아도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인하고 싶었고, 내가 바라는 삶을 지금 살고 싶었다. 은퇴 후가 아니라.

또한 아이에게도 다른 식으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남들이 하는 방법을 따르지 않으면 주류에 낄 수 없는 분위기에서 좀 벗어나서 다른 방식으로 공부를 하는 삶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외생활에는 분명 그런 시도가 허용이 된다. 이곳에서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기준도, 오지랖도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불안에 찬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경제적 상황이 나빠질 경우이다. 확실한 수입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있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이 걱정으로 돌아온다. 나름의 계획과 도전은 그들에게 아무런 위안이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자기들을 안심시킬 증거를 내보이지 않으면 끊임없는 잔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민생활에서 안정적인 수입원은 이 생활을 유지하는데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이건 어디에서 사나 마찬가지일 것 같긴 하지만.



우리의 경제적 상황이 나빠진 이유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늘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는 일들이 생긴다. 생각보다 행정절차가 늦어지거나, 한국의 부동산이 시기에 맞게 팔리지 않거나, 그밖에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터진다. 그런 모든 변수들을 커버할 만한 수입이 준비되어있지 않다면 어려운 시기를 겪는 건 불가피한 일이 된다.

하지만 어디에서나, 이런 변수는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닌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늘 어려움은 불시에 극복하지 못할 것 같은 고통을 동반하며 우리를 찾아온다. 과거가 더 나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고통이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지만 그건 절대 그렇지 않다. 내가 한국에 있었어도 이에 상응하는 어려움은 분명 있었을 것이고, 나는 불안과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사람인지라 선택을 하고 그것이 틀렸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늘 있다.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하는 게 더 나았겠다 싶은 생각이 왜 안 들겠는가. 하지만 지금의 이 시점에서 그런 생각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저 나의 믿음만을 약하게 만들 뿐. 결국 나는 내 인생을 위한 선택을 한 것뿐이다. 나를 위해서, 나의 가족을 위해서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희망을 가지고 선택을 했고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서 남들의 기준으로 평가를 하는 건 맞지 않는다. 그건 내 기준이 아니므로 늘 내 선택은 틀린 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 인생에 대한 선택을 하고 나면 그곳에는 내 인생을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간다는 자유가 있다.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나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또 다른 연재 '책에는 안 나오는 리스본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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