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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개 국어의 비애

포르투갈어가 어려운 이유

by 영오

포르투갈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늘 농담처럼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0개 국어가 되어간다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살다 보니 너무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처음 포르투갈에 올 때 내 영어 수준은 B1정도였다. 듣기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오랫동안 스피킹연습을 하지 않은 탓에 긴 문장 만들기는 좀 힘든 그런 실력이다.

포르투갈어는 여기 와서 하자 하고 들어왔으니 당연히 왕초보다.

이곳이 만약 영어권이었다면 당연히 영어가 좀 늘었겠지만 이곳에서는 급할 때 영어로 대충 소통이 되다 보니 포어를 열심히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 보니 포어도 영어도 늘지 않는 부작용이 생긴다.

거기에 더해서 한국말은 가족들과 있을 때 빼고는 할 기회가 줄어드니 단어 같은 것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한국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세 개 국어가 난무하는 아무 말 대잔치가 되곤 한다.




이민을 와서 언어가 많이 늘지 않은 이유는 적극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았던 이유가 제일 크다.

사실 외국에서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거나 현지 친구들을 사귀면 언어는 늘게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 학교 보내면서 집에만 있거나 한국사람들만 만나는 소극적인 활동만 했더니

당연히 언어가 많이 늘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에 와서 지내보니 포르투갈어가 배우기 쉽지 않은 언어였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발음이 소리 나는 대로 나지 않고 단어들이 길다.

- 포르투갈 알파벳은 영어랑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소리는 매우 다르다. 특히 R발음은 가래 끓는 "ㅎ"소리가 난다. Cristiano Ronaldo(크리스티아누 호날두), Radio(하디우), Roma(호마) 이렇게 소리가 나는 식이다. 또한 O로 끝나는 단어는 보통 "우"로 소리가 난다. 발음이 글자랑 다른 소리가 나니 단어만 보고 읽기가 일단 어렵다.

또한 단어자체도 굉장히 길다. 칫솔(escova de dentes), 주말(fim de semana), 버스(autocarro) 등등 단어자체가 길다 보니 외우기가 어렵고 말도 굉장히 길게 했지만 실제적으로는 별 말 안 하고 아직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인 경우가 많다.


2. 발음에 엄격하다

- 포르투갈 사람들은 발음에 굉장히 민감하다. 발음이 틀리면 열이면 열 다 고쳐준다. 정확한 발음이 될 때까지. 하지만 그 정확한 발음이라는 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좀 어려운 것들이라 감안을 하고 들을 만도 한데 그 점에서는 굉장히 단호하다. 그래서 마트나 길에서 배운 것들을 연습을 해볼라치면 못 알아듣거나 발음을 고쳐주는 통에 자신감이 훅훅 떨어진다.

또한 내가 보이기엔 스페인어 하고도 비슷한 단어들이 굉장히 많은데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스페인어처럼 발음하는 것도 굉장히 싫어한다. 예를 들어서 amigo(친구)는 두나라가 같지만 발음은 "어미구"이렇게 발음을 해야 하고 "아미고"이렇게 말하면 틀렸다고 한다. 스페인어 모음이 주로 양성모음소리에 글자 그대로 발음이 된다면 포르투갈어는 그 소리를 모두 음성모음으로 발음을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포르투갈어만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스페인어와 차별화를 강조한다는 생각도 든다.


3. 문법의 예외가 많다

- 포르투갈어를 배우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중 하나는 예외가 많다는 것이다. 보통은 글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문법을 공부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문법에도 예외가 많다. 거기에다 예외에 또 예외가 있다. 이쯤 되면 선생님도 설명을 하다가 "그냥 외우세요~"로 끝나기 일쑤다. 본인들도 이해가 안 가거나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실정이니 처음 접하는 외국인이 들으면 다들 crazy라고 생각하고 그쯤에서 슬슬 포기자가 나온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나는 포르투갈에서 오래 살았거나 배우자가 포르투갈사람이어도 포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또 여기서 만국공통의 진리가 입증된다. 본인이 필요를 느껴서 배우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native speaker가 옆에 있어도 언어는 늘지 않는다는 것.

그런 점에서 내가 아직 포어에 유창하지 않아도 좌절은 이른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다고 항변해 본다.) 이민 온 지 3년째 되는 해에 하고 있는 어학 수준이 평생 간다는 간담 서늘? 한 말도 있지만 늘 시작이 반이다라는 마음으로 도전해 본다. 사실, 주변에서 모두들 어렵다고들 해서 은근히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입장 바꿔서 포르투갈사람들에게는 한국어가 또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다 같은 입장 아니겠는가. 너무 어렵다고 학습자들이 겁을 먹어서인지 선생님들은 "포르투갈어 어렵지 않아요~"를 세뇌하듯이 이야기하신다. 좋은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할만하다고 생각해야, 또 쉽게 쉽게 접근을 해야 말이 쉽게 나온다. 완벽하게 하겠다는 욕심은 내려놓고 일단 한다는 마음으로 매일 조금씩 포르투갈어와 친해져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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