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같은 말을 해야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

by lisiantak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에 이런 글이 있다.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언어의 온도, p.231)


사실 자녀의 사춘기는 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부모인 우리는 내 것이 아닌 것으로 화를 내고 분노한다. 그리고 나의 화와 분노가 자녀에게로 향한다. 결국 내 감정은 자녀의 감정을 휘저어 놓는다. 감정 다스리는 것이 서툴러서 그렇다.


나는 말이 많지 않다. 말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조용히 있는다. 그러니 재미가 없다. 심지어는 빨리 피곤해진다. 그러다가 졸리기까지 한다. 성격상 한 번 말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말하기도 전에 상대의 반응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말할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말해서 상처 받고 본전도 못 찾은 경험이 있어서다. 좋은 점은 말을 쉽게 하지 않으니 그만큼 말실수는 적다.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적다. 상대가 답답할 뿐이다.


에스키모들처럼 누군가에게 화상 입힐 정도의 감정은 멀리 남겨놓고 오고 싶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내 감정 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을 뿐이다.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그러니 그 뜨거운 감정이 내 마음에 화상을 입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느낀다. 곧 화산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것을. 그러면 집 밖으로 나가 무작정 뛰어 어디론가 가야 된다. 온몸의 땀구멍이 열리고 그곳을 통해 열이 발산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감정의 화산 폭발을 막는 것이다. 뜨거운 감정의 마그마를 응고시켜 버리는 것이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다. '추임새는 못해도 찬서리는 뿌리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원칙 중 하나다.

'추임새'란, 판소리에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가 창(唱)의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하여 삽입하는 소리. ‘좋지’, ‘얼씨구’, ‘흥’ 따위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말에는 힘이 있다. 말은 씨가 되어 아이에게 날아간다. 아이의 마음에 어떤 말의 씨가 떨어졌는지는 바로 알 수 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열매니까. 그러니 아이의 마음에 긍정의 말을 심어 주어야 한다.


말에도 순서가 있다

또 어떻게 말하느냐도 중요하다. 말에도 순서가 있는 것이다. 긍정-부정 또는 부정-긍정, 어떤 순서로 말을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이 다르다. '두 가지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소식. 어느 것을 먼저 말할까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기쁜 소식을 먼저 듣고 싶다. 좋은 소식으로 내 마음의 그릇에 기쁨을 먼저 채운다. 여기에 다음에 들어오는 나쁜 소식이 주는 감정은 희석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을 가끔씩 듣게 된다. 한 번은 말의 심리 중에 '마지막보다 처음이 더 중요하다'는 실험 결과에 대해 말해 주었다.
어떤 인물에 대해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묘사했을 때 어느 경우가 더 호의적인 인상을 갖게 될까?
첫 번째는 "똑똑하고 근면한데, 고집이 세고 질투심이 강해."
두 번째는 "질투심이 강하고 고집이 세지만, 똑똑하고 근면 해."

실험 결과는 긍정적인 평가를 먼저 말한 경우로 나타났다. 어떤 순서로 말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아이의 마음을 긍정의 말로 먼저 터치하는 것, 이것이 소통의 열쇠가 아닐까? 긍정의 말은 아이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반면에 부정적인 말은 아이의 마음에 가시를 돋게 한다. 가시 돋친 마음밭에 어떤 말들이 들어갈 수 있겠는가? 모든 말이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날 뿐이다. 이럴 때는 뚜껑을 잘 덮어야 한다.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다. 생명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따뜻하고 긍정적인 말로 대화의 뚜껑을 덮으면 돋친 가시에 덜 아파할 것이다. 말을 하기 전에 숨을 고르고 말의 순서를 배열해 보는 센스, 그것이 아이를 살리고 관계를 지속하는 길이었다.


꿈을 응원해 줄 수 있는 말
그런데 어른들은 보아 뱀의 몸속이 보이든 안 보이든 모두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고는 쓸데없이 그림 따위를 그리는 것보다는 지리나 역사, 산수나 국어 같은 것에 흥미를 가져 보라고 타일렀습니다. 이렇게 하여 나는 여섯 살 때에 화가가 되려는 꿈을 포기했습니다.(어린 왕자 p.9)


그렇다. 부모의 말은 아이의 꿈을 포기하게도 만드는 힘이 있다. 사춘기는 생각의 꽃이 활짝 피어나는 시기다. 그런데 부모의 생각과 맞지 않다고 해서 아이의 생각을 잘라버린다. 생각의 확장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사춘기 때는 무한한 생각의 확장이 이루어지게 도와주어야 한다. 생각의 빅뱅을 도와야 한다. 이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동행이 아닐까? 화가의 꿈을 포기하게 만든 어른들의 태도를 벗어나 아이만의 꿈을 응원해 줄 수 있는 말. 말같은 말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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