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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Apr 06. 2019

#_오해의 이해

모든 관계는 적당한 오해가 만들어낸 타협점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이 나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명백한 오해였다.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내가 보여주는 건 그저 말과 행동뿐이지만, 그 말과 행동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역시 나는 오해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다는 것 역시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과 생각에 준한 판단이지 그 사람의 입장을 내가 다 알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관계란 적당한 오해가 만들어낸 타협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해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실 오해받는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어쩌면 어렸을 때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생긴 갖은 오해들로 억울했던 기억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깊이 각인된 건 아닐까? 그 사건은 잊어버리지만, 그 감정은 잘 잊히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애당초 오해로 인한 불편함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해를 받는 경우는 여전히 많았고, 그 오해를 잘 푸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을 통해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오해는 기본적으로 타인이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는 사실이었다. 신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 기준에서의 이해 역시 타인의 기준에서는 무조건 오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다.


오해는 결국 자기 방식대로의 이해다.

관계란 기본적으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오해의 간격을 줄여가는 과정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사람들을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싸우지 않고 친해진 사람은 헤어져도 아쉬움이 덜한 법이다. 싸움이라는 게 뭔가? 상대가 가진 오해와 내가 가진 오해가 감정이 실린 말과 행동으로 팽팽하게 대치하는 게 아닌가! 좋은 관계라는 게 어찌 한번의 의견 대립 없이, 아무런 문제없이 형성될 수 있을까 싶다.


오늘 아는 분과 대화를 하다 말실수를 했다. 사실 당시에는 실수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냥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얼른 전화를 했고, 사과를 했다. 그분은 내가 전화로 직접 말해줘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내 생각에는 오해없는 말이었지만, 듣는이에게 충분히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법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가끔 읽었던 책을 다시 읽다보면 내가 좋아했던 글이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어서 더 좋은 경우가 있다. 우연한 오독이 책에 없는 감동을 만들어 낸 것이다.

결혼하고 아내랑 살다보면 내가 오해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된다. 아마 아내도 마찬가지일 테다. 설령 내가 꿈꾼 그녀의 모습에 수많은 오해가 있었을지라도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힘들 때도 많았지만,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하는 나의 감정은 내 삶의 가장 지독한 오해일지도. 굳이 그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가능하면 오래오래 계속 오해하며 살고 싶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실들은 나의 오해가 만들어 낸 허상인지 모른다. 그래서 많이 알수록 겸손을 배우게 된다. 내가 안다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조금씩 커진다. 오해를 이해하고 허용하는 태도만이 우리를 관계에서 자유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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