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대원 Feb 26. 2020

#_하루의 결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

'결'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무심결에'라고 말할 때 쓰는 짧은 시간이나 짬, 사이를 뜻하기도 하지만, 보통 내가 쓰는 의미는 '무늬'를 뜻하는 경우다.


특히 사람을 만날 때는 결이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따라 관계의 호감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여 결이 맞는 사람과 주로 만나지만,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은 또 결이 다른 사람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사람의 결은 꼭 판단해야하는 경우가 아니면 너무 깊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관계의 결도 중요하지만, 일상적으로 더 자주 느끼는 결이 있으니, 바로 내가 보내는 시공간의 결이다.


내 생각이지만, 사람도 공간도 특정한 파동이 있다. 그 파동은 하나의 에너지인데, 그것이 하나의 흐름이 될 때 '결'이 잡힌다. 하루의 결이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무엇으로 시간을 채우며,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진다.


목요일 아침에는 조찬모임이 있다. 6시 30분까지 약속장소로 가야했기에 사무실에 6시까지 출근했다. 다행히 사무실에서 불과 50m 정도 떨어진 호텔이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짧은 명상을 하고, 일주일간 스킵했던 아침낭독도 했다. 이 때 하루의 결이 절반쯤 잡힌 셈이다. 마음이 차분하다.


모임에 가서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있었지만, 마음의 동요함이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러가지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오늘은 그 결이 많이 다르다.


아인슈타인은 세상의 모든 것은 에너지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한다. 그것을 동양적으로 설명하면 '기운(氣)'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양자역학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파동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책이 있는 공간은 책과 관련된 파동을 가지게 되고, 음악이 있는 공간은 음악과 관련된 파동을 가지게 된다. 하나하나를 이런 파동으로 이해하면, 나 역시 하나의 파동으로 해석가능해진다.


태어나 지금까지 눈으로 봐왔던 것들, 귀로 들었던 것들, 입으로 맛보았던 것들, 코로 맡아왔던 것들, 손으로 만져본 것까지, 오감을 통해 받아들인 모든 정보가 나를 거쳐 무언가는 있었을테고, 무언가는 생각하고 있다. 우리 뇌는 그런 입력정보들을 그대로 저장해 두었거나 왜곡해 두었거나 어떤 식으로든 모두 기억한다. 하여 이 정보가 제작기 다른 우리는 그 누구도 타인과 똑같을 수 없고, 저마다 다른 파동을 가진다. 그런 저마다의 파동이 그 사람의 '결'이 되고, 그런 정보의 다양성 속에서도 엇비슷한 결을 가진 존재들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시간적으로 지나간 모든 것이 지금의 나의 파동이 된다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 자체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 존재의 변화를 우리가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개념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이와 관련된 주제는 아니기에 일단 넘어가겠다.)


오랫동안 어떤 형태의 삶을 살아온 사람은 그에 따른 결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결은 그 사람이 매일 반복하는 하루의 결에 따라 만들어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루의 결이 반복되어 삶이 된다. 어쩌면 내가 바라는 건 내가 꿈꾸는 삶을 바로 오늘부터 살아내는 게 아닐까? 관계가 가지는 무늬, 시간이 가지는 무늬, 공간이 가지는 무늬, 이런 것들을 스스로 읽어낼 수 있다면, 실제 자신을 좀더 뚜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그 삶 자체가 아니라,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오늘도 하루의 결을 의미있는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_월요일 아침이 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