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배운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체로 스스로 좋은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껴본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발견할 기회를 얻기 전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좋은 책이기 때문에 읽어한다’는 무언의 강요를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무리 좋은 책도 누가 읽으라고 해서 읽으면 재미가 반감되기 마련이거든요. 결국 아이는 일정량의 책을 읽어내긴 하겠지만, 스스로 “읽고 싶다”라는 욕망을 만들지 못하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학교혁명』(21세기북스, 2015)을 쓴 켄 로빈슨도 자신의 저서에서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는 공부가 얼마나 아이들을 진정한 공부의 즐거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학습 능력에 중점을 둡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19세기 이전에는 세계 어디에도 공교육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산업사회의 수요에 의해서 생긴 것들이지요. 이것은 두 가지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과목들이 우위에 있다는 점입니다. 어렸을 때 즐겼던 과목들에 관심을 가져서는 커서 좋은 직장을 절대로 못 구하니까 오히려 하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들으셨을 거예요. 제 말이 맞죠?
음악? 음악가 되는 게 쉬운 줄 아니?
미술? 미술가가 되면 어떻게 먹고 살려고?
물론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너무나 중대한 착오입니다.
왜냐면 전 세계에서 혁명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대학들이 자기 모습을 본떠서 교육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에 지성은 학습능력이라는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전 세계의 모든 교육제도들은 대학 입시를 위한 절차라고 볼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많은 훌륭한 재능과 창의력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학교를 다니면서 재능 있었던 것들은 별 가치가 주어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비난까지 받았으니 더욱 그렇게 된 것이죠. 더 이상 이런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 TED에서 5,000만 뷰 이상을 기록한 “Do schools kill creativity?” 중에서
비단 독서뿐만 아니라 우리가 해왔던 공부라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좋은 책을 읽어야 했던 이유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목적이었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시킨 대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 들어간 친구들 중에 상당수가 막상 회사를 다니면서 문득 깨닫게 됩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꿈이 아니야’라고.
많은 책과 언론에서 이미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현재 직업의 70퍼센트 이상이 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켄 로빈슨 교수는 이미 2007년 강연에서 미래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교육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앨빈 토플러는 2001년에 “한국 학생들은 하루에 열다섯 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었죠.
이런 조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대입과 취업을 위한 입시와 평가 제도를 통해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학창 시절의 성적과 출신 대학 이름이 내 재능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 제도를 바로잡자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아이들이 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책은 원래 재미있는 거니까요.
지식을 편집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기쁨을 느껴본 사람은 얼마든지 독서와 실천을 통해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들을 스스로 배우며 성장할 수 있거든요. 그 사실만큼은 기억하자는 거예요.
이건 성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실입니다. 공부는 원래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이기 이전에 스스로 배우고 익혀가는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책의 ‘내용을 아는 것’이 중요한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 책을 굳이 읽지 않아도 검색만 하면 얼마든지 그 책에 대한 내용을 찾아낼 수 있는 시대니까요.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는 뜻이지요. 독서에 빗대어 말하자면, “책을 아는 사람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을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제가 독서는 연애라고 말씀드렸지요? 이성을 그저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 있나요? 연애는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교감하는 마음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들어야지요. 그래야만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요.
책에도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까요?
책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건 아무리 말로 설명해줘도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사랑하는 감정을 아무리 디테일하게 설명해준다고 해도 달콤한 첫 키스의 강렬한 느낌과 설레임을 대신할 수는 없듯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