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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y 09. 2019

#_때가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때가 있지만, 아무도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른다.

요즘 점심을 못 먹는 날이 많다. 글을 쓰거나 강의자료를 만들거나 암튼 뭔가가 꽂히면 자꾸 거르게 된다. 혼자 일하다보니 밥먹으러가자는 사람이 없어 일에 몰두하다가 2-3시가 되기 일쑤다. 오늘도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50분. 오늘은 식사를 거르지 않으려고 얼른 컵라면을 꺼냈다. 물을 끓는 소리를 듣고, 라면에 물을 부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잠시 SNS를 확인했다.

몇 년간 못 만났던 반가운 옛 동료의 친구신청이 와있었다. 수락하고 메신저로 글을 남겼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안부를 물었고, 조만간 좋은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다. 순간, 30분 전에 부어두었던 컵라면이 떠올랐다.

얼른 달려가 확인해보니 면이 용기의 2/3가 넘게 불어있었다. 혹시나 하고 한 입 먹어보니 너무 불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물을 끓였고, 라면을 뜯었다. 그리고 이번엔 정확히 3분 알람을 맞추었다. 때를 놓치면 라면도 못 먹는다.


사람에겐 누구나 때가 있다. 만남에도 때가 있고, 물건에도 때가 있다. 하다못해 라면을 먹는 것조차 때가 있으니 인생은 곧 타이밍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는 오빠 오블론스키를 만나러 온 기차역에서 그녀의 운명을 바꿀 연인 브론스키를 만났다. 브론스키 역시 그의 어머니를 만나러 기차역으로 나온 것뿐이었다. 서로 전혀 다른 시간의 영역을 살던 두 사람이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고, 그 지점 이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만남도, 빌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의 만남도, 유비와 제갈량의 만나도 그랬다. 어디 사람 사이의 만남뿐일까. 한 권의 책을 만나 인생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어렸을 때 우연히 본 영화 한편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때가 있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때는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전미래적 시점에서만 확인 가능한 통찰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야 그 때가 시작점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셈이다. 정작 시작할 땐 그게 시작인지 모른다.


사실 때를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이 개봉했다. 전편에서도 그랬지만, 예상치 못했던 결말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하지만 누군가 스포일러를 퍼트려서 결론을 알려주면 영화의 흥미는 반감된다. 실제로 홍콩에서 이 영화를 먼저 보고 나온 사람이 관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결말을 외치다가 폭행당하는 일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결말을 알면 재미가 없는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앞날을 점쳐보고,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지만, 결국 인생이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아볼만 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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