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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대원 Mar 23. 2023

#_사랑은 빠지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다

사랑의 모양은 왜 끊임없이 변할까요?

20년도 넘은 것 같다. 어느 통신사광고에서 김민희가 차태현을 향해 던졌던 한 마디.


" 내가 니꺼야? 난 누구한테도 갈 수 있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두고두고 회자되며, 어떤 광고였는지, 누가 말했는지도 잊어버렸지만, 저 문장 하나만큼은 사람들 뇌리 속에 깊숙이 박혔다.


그렇다. 사랑은 움직인다. 사랑은 오늘부터 사랑하기로 했으니, 영원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져 풀 수 없는 자물쇠가 아니니까. 에리히 프롬의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통찰이 놀라운 이유는 사랑을 감정의 하나가 아닌 활동으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사랑은 활동이다. 감정이 아닌 활동으로 사랑을 보기 시작하면, 감정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쉽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먼저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데, 사랑을 경험하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나 역시 21살에 첫사랑을 만나고 처음 깊이 사랑에 빠지면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가족들도 사랑스럽고, 늘 지나가던 골몰길도 마치 햇살에 반짝이는 느낌으로 필터링된 듯했다.

그건 엄밀히 말하면 호르몬의 영향이지만, 그 호르몬이 나오도록 만든 것은 연인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참여함으로써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첫사랑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앞서 말한 감정적인 경험과 더불어 처음 느껴보는 육체적인 경험(손잡기, 포옹, 키스, 섹스 등)을 통해 훨씬 더 새로운 자극들이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원래라면 짧게 머물다가 사라지는 감정(호르몬 작용)이 지속적으로 증폭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도파민과 엔도르핀이 무한 공급되는 상황이랄까?


사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사랑은 특별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에 있어서 감정적인 경험과 육체적인 경험은 "오직 그 사람"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라기보다는 "처음"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속 사랑에 빠지는 많은 상황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가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같은 맥락의 말들이다. 처음이니까 새롭고 새롭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 "처음"에 부정적이거나 불편한 경험(감정적, 육체적)을 한다면, 사랑에 대한 건강한 인식을 가지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 좋고 나쁨을 느끼는 방식이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 다만, 연애를 많이 해보거나 오래 해본 분들은 알다시피 경험치가 쌓이게 되면 "처음"이라서 생기는 특별함을 빼고 대상을 판단할 수 있게 되는데, 때로는 그런 자만에 빠져있다가 또 다른 "처음"에 특별함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처음 느끼는 감정으로 인한 특별함, 처음 느끼는 육체적 경험을 통한 특별함을 제외하고 남는 영역이 바로 진짜 그 사람과 나를 이어주는 의미 있는 정체성이 된다. 그게 바로 '지적인 사랑'이다.

서로 관심사가 통하고, 대화가 통하고, 추구하는 이상이 통하는 만남에서 그런 지적인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은 대체로 그 사람 고유의 생각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오래 지속가능한 사랑의 형태가 아닐가 싶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감정적인 경험, 육체적인 경험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기에 어떤 형태로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경험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뿐이다. 


혹자는 사랑의 유형을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을 분리해서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관점과 해석의 차이일 뿐 실제 사랑을 그렇게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가장 적극적인 감정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지만, 사람들마다 그것을 떠올리는 이미지는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을 감정이 아닌 활동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공감한다.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역할이라면, 우리는 내 삶의 보다 많은 영역을 사랑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




□ 사랑이 힘든 진짜 이유


대부분의 사람은 일치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욕구조차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에서 상대를 탓하지만, 실상은 자기 문제라는 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는 나의 말과 행동이 움직이는 방향대로 같이 와준 것뿐인데, 정작 그 상태에 도달했을 때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 부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를 탓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성인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서 위로가 필요한 상황인데, 자기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답답하니까 '신나게' 여행 가자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말과 행동은 신나게 여행을 가자고 했으니 남자친구는 최대한 신나게 놀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였기 때문에 신나게 노는 와중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심지어 나는 이렇게 힘든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신나게' 노는 남자친구가 미워 보일 수도 있다.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힘든 것도 몰라주지?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여행 마지막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투었고, 충분한 대화를 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은 깊은 오해에 빠지게 될 것이다. 남자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여자를 이해하기가 어렵고,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남자를 서운하게 생각하다 못해 변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짧은 이야기 사이사이에 분명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들이 오고 가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사실 자신의 욕망(혹은 욕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 있는 게 아닐까?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정말 오랜 시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할까 한다. 더불어 <사랑의 기술>에서 밑줄 친 문장 몇 개만 더 소개하게 마무리하겠다.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 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많이 '갖고' 있는 자가 부자가 아니다. 많이 '주는'자가 부자이다. 하나라도 잃어버릴까 안달을 하는 자는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아무리 많이 갖고 있더라도 가난한 사람, 가난해진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부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무가치하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는 또한 사랑하고 주목하고 파악한다…… 한 사물에 대한 고유한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더욱더 위대하다……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 파라켈수스 (사랑의 기술 도입부 인용문)



*매일 책 속에서 발견한 좋은 문장을 나눕니다.

*오늘 문장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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