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란 필연적으로 대상이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대상이 없는 글은 참으로 허무한 글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글은 아무에게도 가닿지 않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늘 글을 쓸 때 어떤 대상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쓰려고 합니다. 그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합니다.
그 대상이 꼭 타인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론 제 자신에게 말해주기도 합니다.
"책곰아, 너 제법 잘하고 있어."
"책곰아, 힘들 땐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
꼭 멋지고 근사한 말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내 글이 나 자신을 향한 말이더라도 진심이 가득하다면 그 글은 나에게만 의미 있는 글을 넘어 다른 이에게도 힘을 줄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글을 쓰는 마음입니다.
박솔미 작가의 <글, 우리도 잘 쓸 수 있습니다>를 읽다가 참 멋진 조언을 만났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로지 글을 쓰겠다는 목적으로 노트를 펼치거나 문서 파일을 열면 한 문단도 쉽게 채우지 못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게 감정이든, 가르침이든, 소식이든, 뭐든 말이죠.
그의 말이 무척 와닿습니다. '글'을 쓰려고 하면 참 막막합니다. 그런데 대상이 생기면 의외로 술술 풀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남도 비슷하잖아요. 잘 모르는 사람과 어색하게 앉아있으면 도통 할 말이 없죠. 그냥 커피만 홀짝거리거나 의미 없는 안부나 물어보는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절친을 만나면 어떻죠?
"나 글쎄 어제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로 시작해서 마치 이야기보따리가 있는 거처럼 술술 대화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집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글이 쉽게 써지기 시작할 겁니다.
글을 쓰려면 마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글은 운동화에 불과해요. 목적도 없이 글을 쓰겠노라 앉아있는 건, 목적지도 없이 운동화를 신고 현관에 서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글을 운동화에 비유한 부분이 참 좋습니다. 어디 갈지 정하지도 않은 채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을 나서 봐야 막막할 뿐이겠죠. 그렇습니다. 아직 글쓰기가 막막하다면 누구한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정해지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 글을 누구를 위해 적고 있을까요?
저는 책쓰기 수업에 참여하시는 작가님들을 위해 적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막힘없이 술술 써지는 편입니다. 책을 읽다가도 '아! 이 문장은 꼭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누군가 직접 올려주신 글을 읽고 댓글을 쓰다가 영감을 얻어 글감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의를 할 때도 딱 준비된 내용만 하는 것보다는 그때 그때 자유롭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해 같이 고민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대상이 분명할수록 해줄 이야기도 선명해지는 법이니까요. 지난 수업에서 저는 예전 공일오비의 노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했었는데요. '너'가 내가 잘 아는 바로 '그 사람'이라면 필시 해 줄 말도 자연히 많아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