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왜 좋은지 설명하기 어려운 글입니다. 쉽게 설명되는 글은 정말 좋은 글이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설명할 수는 있지만, 뭔가 그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답답한 심정이 남아 있는 글이 내 맘에 와닿은 좋은 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우치다 타츠루는 납득은 되지만, 설명하긴 어려운 글, 그래서 반복해서 읽게 되는 글이 독자에게 강하게 침투하는 글이라고 말합니다.
문장은 독자가 주체적으로 다가서지 않는 한 살아 숨 쉬지 않습니다. '주체적으로 다가서기'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독자 측의 '착각'이자 '오해'이고 심한 경우는 '관계망상'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콘텐츠의 성격을 시원하게 관통하며 설명해 줍니다. 작가가 글을 쓸 때 작가의 생각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해질 리 없습니다. 독자는 결국 독자입장에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 소통의 간격은 오해를 만듭니다.
때론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문장조차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주 쉬운 이야기지만, 독자가 그 문장에 보다 깊숙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끄는 작가의 글이 그렇습니다. 작가가 가진 위상이나 철학, 신뢰의 강도에 따라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주체적으로 다가서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죠.
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글로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글을 독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오해하겠지만, 그 오해의 과정에서 다시 영감을 얻어 독자를 더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독자에겐 얼마든지 오독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에겐 독자가 오해할만한 여지를 줄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런 권리는 독자를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수준 높은 독자들은 이렇게 말해도 충분히 내 뜻 이상의 가치를 읽어줄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어제오늘 수업을 듣는 분들과 수업 외의 시간에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만난다고 해서 서로를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수업에 참여하시는 분들,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작은 성장을 도모하는 분들을 향한 믿음과 관심뿐입니다.
사람들은 방법을 몰라서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일은 관심이 없어서 못합니다.
일도 사람도 관심이 생기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마련이니까요. 더불어 진심 어린 믿음이 필요합니다.
제 자신의 성장과 성취를 믿는 것처럼, 다른 분들의 성장과 성취 역시 믿고 응원합니다.
관심은 사랑의 첫 번째 모양입니다. 믿음은 사랑의 첫 번째 색깔입니다.
오늘도 굳이 귀찮고 힘들지만, 의미 있는 작은 성취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당신을 기쁘게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