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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Oct 26. 2022

자음복지원

2화

 “어.. 어... 어어.”

 “아니야.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기적처럼 깨어난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데.”


 하지만 내 언어는 이때부터 달랐다. 발성 연습할 때나 외쳐대는 ‘아,에, 이, 오, 우’가 첫마디이자 끝마디였다. 원인은 좌측 측두엽 손상으로 인한 실어증이었다. 아마도 파도에 휩쓸릴 때 내가 밟고 서 있던 바위에 머리를 부딪친 모양이다. 거울의 내 모습은 멀쩡했다. 사라진 기억도 없다. 잠시 정신을 잃기 전까지 심지어 바닷속의 어둠이 주었던 공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다만 사라진 건 내 언어였다. 그뿐이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날은 학교 과제를 위해 성북동의 자음복지원으로 봉사활동을 가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언어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에 제한이 있었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복지원은 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곳이었고, 수화와 구화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었던 나는 복지원의 장애인들에게 재능기부를 하는 식의 봉사활동을 했다. 자음복지원은 내가 열여덟 번째 생일을 기념해 시작한 봉사활동 장소로, 벌써 햇수로 3년째 찾아가는 곳이다. 그곳은 내가 처음 언어를 잃어버렸던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많은 복지원이라 더 애착이 간다. 오늘도 같은 이유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잔뜩 사 들고 가는 길이었다. 5월의 녹음은 너무나도 포근했고 성북동의 경사면을 오르던 길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했다. 그 순간 동공을 찌르듯 들어오는 태양 빛과 함께 무언가가 나를 툭 건드렸다.     


 “아...”

 “어머, 죄송해요. 안 다치셨어요? 내리막길에 속도 조절을 못 했네요. 사과드려요.”

 “.....”     


 자전거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그녀는 하늘을 보며 걷고 있던 나와 마주쳤고, 어찌 보면 정면을 보면서 걷고 있지 않은 내게도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그녀의 사과를 친절하게 받아줘야 했다. 하지만 당황하면 습관처럼 떨리기 시작하는 내 입술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흠칫하며 바라보고는 말없이 자전거를 세워 발길을 재촉했다. 아니, 달아났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누구든 나를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은 일단 당황하거나 피한다.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과할 시간도 주지 않음에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익숙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오르막길 끝에 보이는 도로의 우측을 따라 삼청각 길을 걷다 보니 멀리서 복지원이 보인다. 석 달 만에 찾은 복지원은 노란색임을 겨우 알아차릴 정도로 빛바랜 철문에서 깨끗하고 산뜻한 민트색으로 덧칠해져 있었다. 그것 말고는 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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