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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Oct 25. 2022

바다 깊은 곳, 내 음성

1화

 어릴 적, 초등학교 3학년쯤으로 기억한다. 주말이면 가끔 아버지와 함께 바다낚시를 갔다. 가파른 파도만큼이나 가파른 바위, 그 바위에서 멀리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볼 때면 세상 무서운 건 없었다. 바위에 깨져 조각나는 허옇게 일렁이는 파도는 바위에 던져진 달걀의 흰자처럼 사방으로 튀어버렸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를 이겨낼 수 있는 건 세월뿐이었다. 세월만큼 부딪히며 깎이고 다듬어지고 결국엔 바다의 깊은 곳에 자갈로 함께 하겠지. 결국, 바위의 운명은 바다의 품속임을 나는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며 생각하곤 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긴 장마 끝에 오랜만에 나선 바다낚시였다. 그래서 더 설레고 기대에 찬 하루였는지도 모른다. 육지에서 멀지 않은 바다낚시의 명당에 배가 섰다. 나와 아버지는 배에서 내려 가장 안전한 자리를 찾아 짐을 풀고 낚시 준비를 했다. 아버지가 갯지렁이를 날카로운 바늘에 찔러 넣으면 난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자주 보는 광경인데도 갯지렁이의 아픔이 전해져 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다. 그리고는 '획, 지이이이이.' 낚싯대가 던져진다. 잠시 후, 낚싯줄은 파도의 흐름에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바다에 시간을 내어 주고 우린 물고기라는 보상을 받는다. 그 보상엔 일정한 리듬이 없다. 어느 날은 몇 시간이고 허탕을 칠 때도 있고, 운이 좋은 날이면 양동이 가득 물고기 떼가 파닥 거리기도 한다. 그날은 유난히 유속이 세고 파도 또한 일정치 않은 날이었다. 낚싯대는 대가 없이 의미 없는 춤만 추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덧 날은 어두워지고 멀리 있는 등대는 불을 비추며 사방을 감시하고 있었다.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지만 바다 중심은 육지보다 어둠을 빨리 재촉한다.


 “이제 슬슬 채비해야겠다. 오늘은 날을 잘 못 선택한 듯싶다.”

 “돌돔 한 마리가 다네요? 그냥 놓아줄까요?”

 “그래, 방생이 좋겠구나. 산이 네가 방생해 주렴.”


 나는 돌돔을 바다로 던지기 위해 조금 더 아래의 낮은 바위로 내려가야 했다. 뾰족하게 모난 바위를 피해 넓적하고 둥근 바위로 이동하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미끄덩하며 그대로 추락했다. 그때 아버지는 낚싯대를 접느라 바빴고 멀리서 다가오는 거친 파도를 볼 수 없었다. 아버지 탓이 아니었다. 돌돔의 탓도 아니었다. 내 탓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파도의 악랄함을 알지 못했다. 아무런 반항도 못 한 채 파도에 휩쓸려 들어간 바다 안은 조용했다. 어둡고, 아득했다. 그뿐이었다. 파도가 주는 이명과 바다의 고요함에 깊은 꿈을 꾼 듯, 20여 일 만에 정신이 돌아온 나는 그날부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당신 탓을 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탓이 아니에요. 제가 너무 무리했어요.’라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탓이 아니에요. 그래도 그날의 낚시는 너무 행복했다고요.’ 말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내 입술은 열리지 않았고 내 성대는 발성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환경에 당혹스러웠지만 내가 잠들어 있던 20여 일 동안 부모님의 고통은 내가 눈을 떴을 때 두 분의 표정에서 모두 읽을 수 있었다. 핏기 없는 피부와 시선을 잃은 눈동자, 언제 감았는지 모르게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퉁퉁 부은 눈가는 당시 내 생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오신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가장의 노릇을 하느라 넥타이를 했지만, 입술 아래 덥수룩한 턱수염은 그간의 자책을 의미했다. 간신히 눈을 뜬 내게 미안하다며 손을 부여잡고 우시는 두 분께 ‘나 괜찮아요.’를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난 이렇게 읊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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