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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Oct 27. 2022

너를 만나다

3화

 -철문이 새로 단장을 했네요? 멋져요.-

 

 나의 손이 바빠졌다. 나의 언어를 대신해주기 위해서다. 원장은 나와 같은 언어로 대응했다. 언어장애인에 대한 배려였다. 원장은 자음복지원의 터줏대감이다. 서울 외곽, 작은 성당의 수석 신부로 계시다가 30년 전 복지원 개원과 동시에 줄곧 이곳의 원장으로 역임 중이다.      


 -봄단장을 좀 했지요. 투표로 색깔을 선정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민트를 좋아하나 봐요.-


 원장과 짧은 인사와 그간의 안부를 물은 뒤, 복도를 나왔다. 그리고 시청각실로 들어섰다. 집중력이 성인보다 약한 아이들을 위한 최선은 시청각을 이용해 화면에서 나오는 구술을 수화로 번역하여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배운 방식이기도 했고, 내가 자음복지원에 추천한 방식이다. 대게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언어장애를 동반한다. 나와 같은 사고로 인한 상실일 경우도 상대 기능이 퇴화하고 결국 두 가지의 장애를 갖기 마련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난 듣는 것에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시청각실은 이미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난 일단 칠판에 〈예쁘게 얌전히 앉아서 보는 친구들에게는 시청각이 끝난 후 간식을 주겠습니다.〉라고 쓴 후 아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재생했다. 그리고 약 한 시간여 동안 내 손은 빠르지만 정확하게 움직였다. 동시에 입술도 정확하고 절도 있게 움직였다. 문득, 오던 길에 부딪혔던 그녀가 떠올랐다. ‘당황하면 입술을 떠는 습관을 버려야겠어.’ 당시로 돌아간다고 생면부지의 그녀에게 입술을 정확하게 벌리고 손짓으로 수화를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상황에 미련이 생겼다. 봉사가 끝난 후 복지원에서 가까운 브런치카페를 갔다. 복지원을 다녀오는 날이면 으레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보니 밖에 아까 그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난 그녀를 의식했지만, 그녀는 아직 나를 못 알아본 듯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고구마라떼 아이스로 한 잔 주세요.- 


 수화로 주문이 가능한 곳,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 키오스크를 굳이 쓰지 않아도 정겹게 주문이 가능한 곳, 내가 사랑하는 곳이다. 이 카페 사장님 역시 수화를 잘하신다. 그래서 복지원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난 건네받은 주문 음료를 들고 빈자리를 탐색했다. 최대한 그녀의 자리에서 떨어져 앉고 싶었지만, 카페는 협소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녀의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봉사활동 실습일지를 쓰기 위해서 조용히 노트북을 펼쳤다. 20여 분쯤 지났을까 어딘가에 시선이 느껴졌다. 그녀였다.     


 “아까 저랑 부딪혔던 분이시죠? 사람이 사과했으면 대답을 하셔야지. 제가 일부러 부딪힌 것도 아닌데 사과하는 사람 무안하게 쳐다만 보고. 아까 좀 기분이 언짢았어요.”     


 아, 틱틱거리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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