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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Oct 28. 2022

불러보고 싶은 이름

4화

 “이봐요. 왜 웃어요?”     


 적잖이 당황할 그녀의 모습이 상상되지만,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아까 내가 그렇게 쳐다본 건 내가 가진 장애를 대신해 상대를 위한 배려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동시에 아까 내가 봤던 그녀의 뒷모습은 도망간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 자신감이 생겼다.      

    

 -죄송합니다. 제가 장애가 있어서 대화가 힘들어요.-

 “어머, 죄송해요. 그것도 모르고 제가 무례했네요. 제가 하는 말은 들리시나요?”     

 

 난 손짓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그건 내게 다시 찾아온 봄이었다. 하지만 나의 처지가 나를 위축시켰다. 늘 그랬다. 그때마다 사고 전의 내 목소리가 그리웠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과묵한 청년이 되어야 했고, 오늘처럼 여러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장애를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일단 언어장애, 그 밖의 장애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은 이 사회에서 낯선 풍경은 아니다. 물론 일반적이지 않은 부분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반인과 장애우를 구분 짓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흘깃흘깃 훔쳐보듯 쳐다보거나 대놓고 욕설을 내뱉는 사람들은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장애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도 의식하게 만드는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래도 사회 곳곳에서 의식적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있으니 나 같은 장애우들에겐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그날 그녀의 만남은 내가 잠깐이나마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게 해 주었다. 그날 그녀와 긴 대화를 이어 갔다. 시작은 카톡이었다.     

 

 “휴대전화 있으세요? 있으면 저 좀 주실래요?”

 “좀 봐도 될까요? 카톡도 하시네요? 다행이다”

 잠시 후,

 “여기요, 여기 이 프로필이 저예요. 친구 추가했어요. 맘대로 친구 추가해서 죄송해요. 괜찮죠?”     

 

 늘 주변을 의식하고 소극적인 나와는 다르게 즉흥적이고 조금은 멋대로인 그녀의 성격이 부러웠다. 그녀의 부모님은 스페인에서 거주 중이고, 그녀 홀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최근 한국으로 들어왔다며 한국 사람이 그리웠다고 푸념하듯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그녀의 프로필을 살펴봤다. 프로필과 연결되는 블로그도 훔쳐봤다. 블로그를 보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난 아직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 두 시간여 동안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서로 통성명 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있던 것이다. 블로그의 댓글에선 그녀를 ‘선영’이라 부르고 있었다. 대부분 해외에서 찍은 사진들이었고, 남자 친구도 있는 것 같았다. 언감생심 골키퍼가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다. 난 카톡에 그녀의 이름을 ‘친구’로 저장했다. 친구이긴 했지만 늘 설렘을 주는 친구였다. 우린 가끔 복지원 앞 카페에서 만나 조용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그녀의 연애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행복하면 행복한 연애에 응원을, 힘들면 힘든 연애에 조언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나의 마음도 조금씩 커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카톡 프로필에 모든 인사말이 사라진 걸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싶었지만, 블로그의 남자 친구 사진까지 모두 사라진 걸 확인하고는 그녀가 이별했음을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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