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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 설 Oct 29. 2022

그녀가 엄마가 된답니다

5화

〈윤 산 - 힘들어?〉

〈선 영 - 어떻게 알았어?〉

〈윤 산 - 카톡이 심상치 않아서 블로그를 좀 봤어. 미안. 훔쳐보려는 의도는 없었어.〉

〈선 영 – 많이 힘들어. 나 좀 위로해 줄래? 내일 만나자.〉


 다음날 그녀는 조금 핼쑥해진 얼굴로 나를 반겼다. 생각보다 밝아 보였지만 말을 이어갈수록 그녀는 괴로워했다. 이별의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녀의 상처를 들춰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진짜 고민은 따로 있다면서 가방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예쁘지? 뭔 줄 알아? 아기야.”     


 그녀는 남자 친구와의 이별 때문에 힘든 게 아니었다. 그와의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힘들어했다. 헤어진 지 약 10일이 지난 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두 번 다시 남자 친구를 만나기도 싫지만, 낙태는 더 싫다고 학을 뗐다. 몇 날 며칠을 설득했지만 제멋대로인 그녀를 막을 길은 없었고 그녀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갔다. 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 이제 7개월 접어들어. 그래서 오늘 휴학계 냈어. 이제 청바지도 못 입겠어. 있지, 네가 아빠 할래? 내가 엄마 할게.”     


 그녀와 함께 국수를 먹는 중이었다. 국수 때문에 사레가 들려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기침을 해댔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한참을 웃어댄다. 진짜 예쁜 얼굴로 그렇게 한참을 웃어댄다. 그러면서 태연하게 농담이었단다. 날 들었다 놨다 한다. 그렇지만 난 속으로 다짐했다. ‘네가 원하면 난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어.’ 우리는 국수를 다 먹고 쇼핑을 시작했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임부복이 필요해졌다. 옷을 고르면서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렇게 낙태를 강요했던 것이 정말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조차도 행복해졌다. 그녀의 행복은 항상 나에게 전염됐다. 그녀가 휴학하고 나서부터는 집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아졌다. 식욕도 늘고 그만큼 살도 올랐다. 이제 귀엽기까지 한 그녀가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여자 혼자, 아빠도 없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장애우로 사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알면서도 말리지 못하고 방향을 잘 잡아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결국, 내가 그녀의 집 주변으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나의 첫 독립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무척 반가워했다.     


〈선 영 - 너, 집은 보안이 생명이다? 수압도 정확히 체크해야 해. 제일 먼저 고장 나는 게 화장실 변기다. 꼭 내가 말한 거 다 체크해야 해, 알았지?〉

〈윤 산 - 알았어. 걱정하지 마.〉

〈선 영 -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지. 집은 여자가 골라야 하는 법이거든.〉

〈윤 산 - 아니야. 요즘 날도 덥고 너무 위험해. 수시로 동영상 찍어 문자 보낼게. 그럼 되겠어?〉

〈선 영 - 아니. 나 심심하단 말이야. 나도 데리고 다녀라, 응?〉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나의 거주지를 고르는데 열심이었다. 몸도 무거운 임산부가 걸음은 얼마나 빠른지,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더위에 축 처진 오리의 뒷모습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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