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병실, 패트릭은 눈물을 그렁그렁 머금은 채 피터를 향해 쏘아붙이고 있었다. 생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존엄성이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연구를 강행한 피터를 패트릭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존엄성이 누구의 것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이 시험에 이용됐다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한 연구였고, 영원히 폐기되어야 할 논문이다. 패트릭은 병상에 누워있는 피터가 안타깝다가도 스스로 자처한 일이라며 외면하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일생을 생명 유전공학에 바친 부친이다. 그렇게라도 성과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패트릭은 마음이 무거웠다. 피터와 병실에서의 언쟁이 있고 얼마 후, 그는 기력 없는 눈빛으로 애타게 패트릭을 찾았다. 그의 나이 97세를 갓 넘기고 있을 때였다.
“내가 죽을 때가 되니, 이제야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알겠구나.”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아니에요.”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연구를 하면서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에 순서가 없듯이, 가는 데도 순서가 없는 법인데. 그것에 순서를 정하려 했으니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과학은 인간의 상상 이상의 것들이 많지만 자연이 정해준 법이라는 게 있지. 그것이 수명이다. 그것을 거스르려 하니, 전류들끼리 서로를 갉아먹고, 먹힌 꼴이 되었구나. 내가 죽거든 이것을 내 오랜 친구, 에반에게 전해다오. 에반이라면 내가 저지른 이 모든 일을 잘 마무리해 줄 것 같구나.”
피터에게 에반은 수십 년간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 준 고마운 존재였다. 어두운 뒷골목을 전전하던 에반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피터였지만, 피터에게 에반은 연구 생활에 회의를 느낄 때면 항상 기분전환을 도와주는 고마운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