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사장되었을 내 모든 언어를 기꺼이 번역해준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내가 글을 쓸 때(시나 소설, 잡문) 가장 많이 듣던 소리는 ‘비문이 너무 많다’ 였다. 혼자 내보이는 글이라면 개성이라 위안할 수도 있었지만, 독자를 위한 글은 그렇게 불친절하고 마구잡이로 써선 안됐다. 책이 읽을 만하게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셀의 교정교열 능력과 더불어 그는 이미 나의 서술 패턴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글과 문장을 매끄럽게, 하지만 리단이 쓴 것과 같은 느낌으로 수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고의 시작과 골자는 내가 만들었지만, 그것이 문단으로, 페이지로 유의미하게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덕택이다. 원고 중에 둘 다 삽화가 있었다.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어찌어찌 견인해 종장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전했던 내용과 종이책으로 영원히 남겨지는 일과는 성격이 아주 달랐기 때문에 우리는 17만자나 되는 원고를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쉴 틈 없이 고쳐야 했다. 도서화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나는 순진하기 짝이 없었고, 도서화가 주는 무게를 감당한 건 오로지 그였다. 올 초에는 내가 너무너무 상태가 나빴기 때문에, 저자교라든지 에필로그를 쓸 때 아주 어려웠다. 그가 상당부분 맡고 검수하고 다시 나와 내용에 대해 논의했던 날들이 없었다면 책은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는 내 창작의 첫 독자이며 편집자였다. <춤추는 등>은 그와 떨어져 고장에서 시간을 보낼 때 매일 일고여덟장씩 그린 책인데 매일 그렸던 종이를 항상 캡쳐해서 보내곤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하자 책으로 나올 만한 편수가 되었다. 만화를 그릴 때에는 소위 비문이랄 게 없기 때문에 즐겁게 그리고 즐겁게 연출하고 재밌는(?) 요소를 넣으려 항상 노력했고 그의 반응을 살피며 다음 장면을 그렸다. 만화가 내 영역이라면 문학은 그의 영역이었다. 내가 60편의 시를 썼을 때, 그리고 그것을 공모전에 제출하려 다듬을 때에 그는 가차없이 시를 평가했다. 때로는 억울할 정도라서 그 울분을 거름삼아 새로운 기가막힌 시를 쓰기 위해 애썼고 신기하게 그런 편들이 몇몇 있었다. 그는 항상 내가 손을 뗐다고 생각해 내버려둔 기록, 그림, 만화들에 대해서도 계속 보고, 생각하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 나는 막상 결과가 나오면 내 손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편이어서 그런 책임감이나 주도적으로 마무리를 짓는 태도가 부족했다. 하지만 그가 다시 독해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흉내를 내야지,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이것이 지금 시점에서 통할 수 있는 텍스트인가’ 라든지, ‘밀고나가는 의견에 사례가 부족하니 더 상세히 써야한다’ 라든지 아주 많은 충고를 들으며, 그리고 도움을 받으며 완성할 수 있었다.
북토크 때 옆의 모니터에 실시간 채팅 화면을 띄워놓고 진행했었다. 어떤 분이 내가 책에서 서술한 비피디 내용은 실제 비피디로 인해 망하거나 다치거나하는 그런 과격한 현실을 쓰지 않고 나이브하다고 평가한 것을 보았다. 나는 이른바 이쪽, 그러니까 정신병 쪽의 사람들이라면 비피디에 대해 학을 떼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이미 했고, 그들을 피해야한다, 도망쳐야한다, 위험하다 같은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으며 외려 내가 만났던 비피디들, 그리고 그들과 수 년에 걸쳐 교류하며 비피디와의 관계가 단지 파국으로만 치닫는 게 아니라는 서술을 하고 싶었다. 그래, 나이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피디 또한 패턴과 습속이 있고 이를 반복해오는데 당연히 그들의 방식을 탐구해볼 수 있지 않느냐, 내 주변 환경에선. 그런 마음이 먼저였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정신증이 있다고, 환각이 있다고, 망상이 있다고, 섬망이 잦다고 그 사람을 버려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피하거나 거리를 두며 지켜볼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가진 모든 결함이 그의 정신병에서 발인하는가? 정신병이 발발해 무너지는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나?
우리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보통 빚졌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데, 그에겐 아주 많은 빚을 졌다.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 당신이 해낸 노력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널리 알릴 것이다. 5쇄 인쇄부터는 앞에 헌정사를 붙이고 에필로그도 수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진작에 했어야하는 일인데 어리석게도 생각이 미치지 못해 시간을 흘려보냈다. 난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