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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리 Oct 25. 2015

떠나온 걸 후회하는 아침

너도 떠나 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12


떠나온 걸 후회하는 아침

Christchurch

New Zealad


      


언제부턴가 생각이 많다는 말을 들었다. 몇 번 듣다 보니 익숙해졌고, 맞는 말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다지 나쁜 말은 아니었지만 계속 듣다 보니 왠지 부정적으로 느껴져서 듣기 싫어졌다. 그래서 말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외로울 때면 사람 대신 다이어리를 먼저 찾았다. 혼자 있는 낮에는 카페 구석에 앉아 사람들과 부딪히며 든 생각을 끄적였고, 혼자 있는 밤에는 혼자라서 할 수 있는 고민을 아무 종이에나 뱉어놓았다. 그리고 그걸 소중한 유산처럼 간직했다.


여행을 한다고 해서 단번에 대범해지거나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각하고 걱정할 거리가 늘었고, 늘 찾을 수 없는 답을 찾아 온갖 곳을 쏘다니며 스스로를 피곤하게 했다.



어느 날 여행길에 서서, 뱀파이어가 피를 빨 듯,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쭉쭉 빨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의 긴 생각과 답 없는 고민에도 늘 귀 기울여 주었고, 그네들의 이야기를 덧붙여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지혜를 나눠주었다.


그들의 뜨거운 에너지가 몸 안으로 들어와 피와 살이 되어 남았다. 말보다도 글보다도, 더 크게 더 넓게 또 더 깊게. 모두의 경험과 함께 나눈 생각들이 몸속 구석구석에 박혀 어려움을 이기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고 날 더 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고.


그리하여 이제 세 번째 여행을 떠난다. 여행한 나라로는 7번째다. 나에겐 가야 할 곳들이 아직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다. 여정은 이제 겨우 시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밤, 비좁은 호스텔 방에 앉아 홀로 떠나온 것에 대해 긴 생각을 한다. 긴 생각은 그보다 더 긴 후회로 이어진다.



나는 왜 떠나왔을까.


겁이 많아 밤거리를 홀로 돌아다닐 용기도 없으면서. 똑똑하지도 않아 아직도 사람들과 능란하게 대화를 나눌 만큼 영어를 잘하지도 않으면서. 소심해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또 헤어지는 게 아직도 이렇게 힘이 들면서. 나는 왜 떠나와서, 이렇게 괴로운 걸까. 그런 마음으로 또 왜 계속 떠나는 걸까. 외로우면서.


별도 없는 어둠 속,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홀로, 떠나온 걸 후회하고 있었다.

      


짐을 싸는 동안 동이 튼다. 햇살이 창문 너머로 스며들기 시작하자 마음속의 어둠이 차츰 옅어진다. 옅어지는 어둠을 더욱 밀어내며 다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떠나온 것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은 이 장소 탓이니까. 다른 곳으로 떠나버리자고 다짐한다.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자. 그럼 다 괜찮아질 테니. 오늘도 해는 떠오르고, 가야 할 길은 아직 길게 남아있으니까. 여기서 떠나온 것 후회한다면, 더 있지 말고 저기로 가자. 저기로 가서도 또 후회가 든다면, 또 다른 곳으로 가자.


다만, 여행 자체를 포기하진 말자.

제발 그러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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