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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Aug 18. 2017

안전캡슐에서 보낸 하루

디모스 사람들이 노는 법

안전지대 캡슐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예요.


7월 디모스 모임이 끝난 날 밤, 혬이 카톡방에서 한 말이다. 다들 이 말에 공감했다.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다들 묻는다. “만나면 대체 뭘 하세요?” 사람들이 디모스에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디모스 사람들 만나면 우선 5시간 정도 근황토크를 하구요, 저녁을 먹고 집에 갑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모자라요. 깔깔.”


리워드 없어도 기꺼운 투자


처음에 나는 디모스가 어디로 갈지에 관심이 많았다. 우리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누구에게 우리의 곗돈을 몰아주게 될까. 그런데 지금 내게, 그게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들의 안부, 우리가 흩어져 살며 생각한 것들, 우리가 지금 겪어 나가고 있는 일상들. 어쩌다 모이게 된, 이렇게 다르지만 비슷하게 살고 있는 우리가 하나의 결정을 해나가기 위해 겪어낼 일들이 더 궁금하다. 지난 5개월 동안 그렇게 되어 버렸다.

콩, 디모스 모임 일기


디모스 사람들은 지난해 연말 거리에서 새로운 방식의 시위를 해보자는 모임을 계기로 만났다. 곗돈을 모아 의미 있는 프로젝트에 투자하자는 아이디어는 거리 시위 뒷풀이 자리에서 나왔다. 투자사에서 일하던 세나가 “좀 더 작고 의미있는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싶다”는 바람을 터놓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밝고 가볍게 하지만 열정적으로 호응했고 이것이 6개월짜리 투자 프로젝트를 위한 디모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매월 만나서 각자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프로젝트 담당자와 만나 투자 또는 후원을 타진하고, 최종적으로 지원할 프로젝트를 선정하기 위한 방법을 합의하고, 내부 피칭까지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일반적인 회사에서 흔히 하는 일들과 꼭 닮아 있다. 우리는 회사와 같은 방식으로, 같은 자원을 들여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회사에서 하는 사업과 디모스 프로젝트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추진하는 주체들이 바라는 보상이 다르다는 점이다. 회사에서는 금전적인 보상이나 승진 기회를 제공하지만 디모스에서는 프로젝트 추진 자체를 보상으로 삼는다. 우리는 ‘임팩트’를 우리 투자에 대한 기대수익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저 재밌어서 하는 일이다. 돈을 모아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써버리는 ‘이상한 계모임’이다.


너무나 다른 사람들, 어렵지만 문제될 건 없어


“인간은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아무리 따져봐도 기회비용이 더 비싼 선택을 내렸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의사 결정을 한다. 디모스 모임이 있던 토요일을 앞둔 나도 그랬다. 손떨리는 수업료를 내고 매주 토요일을 온전히 학원에 투자한 7월. 시간당 수업료를 머릿속으로 계산해보고, 디모스에서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마음속으로 따져보았다. 모임 시간과 겹치는 수업을 빠지고 가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소셜 섹터’에서  일하면서 임팩트 측정, 정성적 가치 평가라는 개념에 익숙하고 관심도 있지만, 주관적인 걸 객관화하는 게 가능할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다 디모스에 오면 내가 느끼는 이 시간의 가치를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직감적인 측정/ 평가라니 비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이게 가능하다는 걸 경험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 디모스 사람들이다. 우리가 기꺼이 곗돈을 ‘소셜 투자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썬, 디모스 모임 일기 


디모스에 관해 소개한 글을 읽은 사람이든, 혹은 디모스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이든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러는 건지 궁금하다”는 반응을 많이 보였다. 디모스는 정말로 사소해보이는 ‘곗돈 임팩트 투자’를 위해 멤버들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대체 왜? 니네 거기서 뭐하길래? 이런 질문들이 잇따라 나오는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디모스의 투자 프로젝트는 순풍에 돛단 것처럼 신나고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예컨대 투자계획을 세우면서 몇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나타났다. 그 중 하나는, 각자가 선호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더 나은 것을 선정할 평가기준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과 폐지수거용 리어카 개조와 저렴한 가격의 보급형 DIY 공기청정기 제작 중 어떤 것에 투자해야 좋을까? 우리는 프로젝트를 추진에 필요한 여러가지 도구와 방법, 기준을 완전히 새로 개발해야 했다.

또 다른 문제는 만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디모스 멤버는 하는 일도 직장도 다 다르지만 모두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들 엄청나게 바쁘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거나 혹은 회사 비슷한 곳에서 일하거나 소속 없이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경우까지 모두들 자기 일 외에 다양한 관심사와 만남에 아낌없는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 디모스 사람들은 일과 자기 삶과 놀이의 균형을 추구하거나, 혹은 직장-집을 습관적으로 오가는 것에 대해 늘 재고해보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서 그러하듯이 많은 차이와 독자적인 취향을 아낌없이 드러내고 그것에 삶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하든, 어떤 방향을 바라보든 서로가 가진 생각과 사용가능한 시간조차도 달랐다. 요컨대 디모스에서는 이러한 차이들을 어떻게 묶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 늘 화두였다. 프로젝트 결정 방법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모임 날짜를 잡는 것까지 말이다.


우리가 모여서 하는 일


놀기 + 먹기 + 회의의 구분이 없는 시간 / demos


그래 오늘은 완전 수다떠는 날이었다. 디모스에서 수다를 떠는 일은 단순 수다 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거다. 내가 디모스에서 모두와 대화하면서 느낀 감정은 그 어떤 이들과도 달랐다.

내가 디모스에서 깨달은 사실은, 일상의 모든 민주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상처받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아?” 이렇게 한마디 덧대려다가 아, 그러지 말자. 하고 참았던 그 모든 순간들이 다시 되살아났다고 할까. 그런 억눌림 없이 물고기 떼 처럼 대화하는 경험은 나를 깨웠다. 그리고 6,7월 동안 가득 쌓인 나의 욕망은 어서 모임에 가라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스타, 디모스 모임 일기


하루 중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꺼내놓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날들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하는 말이나 해야 할 것 같은 말들을 하며 보낸다. 사소하지만 빛나는 바람들, 스트레스를 날려줄 농담, 인간관계에서의 고민들은 지금도 우리 마음 속에서 나올 기회만을 엿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쉽사리 마음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서로 다른 생각과 관심사와 일터와 삶의 생태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디모스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꺼내놓는 일이 더 어렵지 않을까? 디모스 사람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시위’라는 주제를 통해서 만났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스럽게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오늘은 모인 모두가 비슷한 분량으로 자신의 일상들을 얘기하는데 여섯 시간을 썼다. 내가 쌓아나가야 하는 커리어, 내가 겪는 불안, 소신과 현실 사이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들, 진짜 하고 싶어져버린 일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같은 것들. 누군가의 일상이지만 곧 내 일상이 되기도 하고, 또 우리의 일상이기도 한 이야기들. 

오늘 좀 피곤한 상태로 모임에 갔다.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누군가의 얘기를 모두가 아주 집중해서 잘 듣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다. 아주 거짓말처럼 해가 났고.

응, '우와 나 쉬고 있어'라는 기분이 들던, 바로 그 순간.

콩, 디모스 모임 일기




우리는 듣고, 호응하고, 자신의 생각을 내어놓고, 그것을 다시 경청하고, 이 주제에서 저 주제에서 건너뛰고, 그러면 또 그것을 집중해서 듣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 패턴은 이후 모임에도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디모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일의 9할이 그것이다. 나머지 1할은? 먹고 마시는 일이다. 우리의 대화 방식과 문화를 혬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 때 뭘 했는지 딱히 기억 안 난다. '기억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조차 어려운 세상에서 이런 거 기억 안해도 되는 모임이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 / demos


“디모스다운 게 뭐지, 밀레니얼 세대다운 걸까? 그럼 밀레니얼 세대다운 건 또 뭐야. 선명히 떠오르지가 않았다.

딱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공통의 감정과 방식은 있다. 자기 질문을 갖고 그걸 풀어가는 과정에서 언젠가 변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과정에 집중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은 채 생각을 전하고 응원한다. 모호해보이지만 성심껏 일구는 과정과 그것을 채우는 욕망은 선명하다.”

혬, 디모스 모임 일기


처음 만났던 우리가 그와 같이 대화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다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인지, 그날 저녁을 먹기 위해 모였던 연남동 중국집 ‘모란’이 그런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줬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 날 모인 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인근에 있던 우리집에 모여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이후로도 같은 방식으로 디모스의 역사가 이루어졌다. 모이고, 누군가 말하고, 집중해서 듣는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건.

디모스는 8월까지 모두 7번 모였고, 그 과정에서 투자 프로젝트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관한 글을 세 번 썼지만 사실 그 글에 관련된 내용 외의 모든 이야기는 프로젝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쓸데없지만 소중한 각자의 이야기’였다. 세상 사람들이 수다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 말이다.


안전한 수다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디모스 모임에 가면, 자꾸 재밌는 일을 상상하게 된다. 7월 모임에서 상상한 일은 ’아무말 대잔치 컨퍼런스’.

만약에 우리가 100명이 된다면 우리끼리 오픈마이크를 해보는 건 어떨까? 디모스에서 일상의 민주주의, 일상의 정치에 대해 늘 12명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듯이, 100명이 느슨하게 텐트에 둘러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한 곳에 모여 술을 홀짝이고 누구는 돗자리에 눕고 누구는 기대고, 누구는 서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마신다면 어떨까?

말하고 싶은 사람은 말을 하고, 음악을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은 음악을 선곡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은 노래를 부를 수도 있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돗자리를 마련해서 15분씩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알록달록 돗자리 위에 올라가 아무말 대잔치를 하는 거지.

난 김치를 담가 가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최근 한 달 내게 있었던 일상에 대해 만담을 해야지. 노동자로서 여성으로서 시민으로서 내가 느낀 고민들을 털어놔야지. 웃기면 웃고, 슬프면 같이 우는 그런 자유로운 시간,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아무말 대잔치 컨퍼런스를 꿈꿔본다.

컨퍼런스가 일어나는 커다란 텐트 바깥은 선선한 가을이었으면 좋겠다. 하늘이 맑아서 별이 정말정말 잘 보였으면, 그래서 몇몇은 그 텐트 바깥에서 연애를 할 수 있도록.”

- 세나, 디모스 모임 일기



뭐든지 말해도 괜찮은 모임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그 아이디어는 누구의 평가도, 정밀한 실행계획도, 책임도 필요치 않는다. 자기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아야 한다거나 실행에 필요한 자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어떤 아이디어가 좋은 아이디어냐고? 그것을 실행하면서 만족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소셜투자 계모임’의 탄생도, 디모스 모임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도 정말로 가볍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서로간의 신뢰 덕분이었다. 세상 안전한 수다와 그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모임 디모스를 만들고 함께할 수 있던 것은 만남이라는 우연을 기회로, 그 기회를 통해 독특한 모양의 행복을 만들고 싶어한 디모스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노력과 관심 덕분이었다.


“자유란, 자신의 이유로 걷는 것이다. 과거의 이유가 지금의 이유가 안 되면 떠나면 된다. 우리가 고민하는 순간은 나의 이유를 잃어버렸을 때 과거의 이유가 지금의 이유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얼마 전,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발견한 대목이다. 길길이 날뛰던 내 안의 어린아이들이, ‘맞아 맞아 내 말이, 저거였어.’라며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내가 만나는 디모스의 청년들은 나와 다르지 않다. 인생의 과정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앞을 살펴보는 사람들. 그리고 욕망에 충실하거나, 그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 과정에서 만난 우리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 건 너무나 당연한 거고, 어제 이야기 한 말이 오늘 와서 달라져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 멜로디, 디모스 모임 일기


더 떠들자

디모스는 8월 20일 투자 프로젝트 선정을 최종 합의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거쳤고, '코인' 형식의 투자 방식으로 복수 프로젝트로의 최종 지원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처음 제안된 11개 프로젝트 가운데 3개의 프로젝트가 후보로 올랐고, 이 가운데 2개 프로젝트에 우리가 지금까지 모은 곗돈을 부을 예정이다.

어떤 프로젝트가 선정되는지도 중요하지만, 건 우리가 지난 모임에서 세운 ‘5시간 근황토크’의 기록을 앞으로 깰 수 있을지 여부 또한 모임 내 초미의 관심사다. 아마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닐 듯하다.


“나는 이 모임만 오고 나면, 마음이 굉장히 편해지는데, 그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많이 뒤섞이고 깨져버린 내 안의 농도와 점성으로 돌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에겐 디모스가 그렇다. 좋다는 말이다. 사랑한단 말이야~”

멜로디, 디모스 모임 일기


멜로디의 말처럼, “자기만의 농도와 점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다음 번 디모스 모임이 몹시 기다려진다.


7월 모임이 끝나고. / demos



해보는 모임 디모스(demos)는 올해 초부터 사회적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에 투자하거나 그러한 일을 하는 개인/단체를 후원하는 계모임을 해보고 있습니다. 디모스의 취지와 활동은 아래 글을 참고해주세요.


> [세상에는 소셜 투자하는 계모임도 있다 ... 특별한 투자 모임 '디모스 이야기']

> [2017 상반기 디모스가 주목한 소셜 프로젝트 (상)]

> [2017 상반기 디모스가 주목한 소셜 프로젝트 (하)]

> [소셜투자 계모임 디모스의 '보통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 12인 12색, 디모스의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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