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2_2015년 8월 24일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가 웁니다.
응달 축대 밑에서 조용조용 혼자서 웁니다.
해 기울어 버드나무 그림자 길고 축대 앞에서 혼자서
노마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앉았습니다.
가만히 노마는 귀뚜라미 마음이 되어 봅니다.
노마는 점점 귀뚜라미를 닮아 갑니다. 귀뚜라미는 점점 노마를 닮아 갑니다.
......(현덕, <귀뚜라미> 中)
즐거운 소식을, 어떤 만남을, 월급날을, 그리고 또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또 어느새
시간이 냉큼 흘러갔습니다.
아직 햇볕은 뜨겁지만 바람은 제법 시원해서
커다란 나무 밑에 서 있으면 기분이 상쾌해지는 때입니다.
하늘도 한번 올려다보고, 괜히 바람이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냄새를 킁킁 맡기도 하고
밤이 되면 창문을 열고 시원해진 밤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온 것 같아서,
혹시나 기다렸던 그것이 드디어 왔을까 했다가
아침에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
어이쿠, 그래 아직 아니지, 조금 더 기다리자,
하게 되는 계절.
여름 햇볕이 한창 뜨거울 때
수박이 다 익었습니다.
수박 수영장을 개장할 때가 왔습니다.
"음, 시원하다."
수박이 "쩍!" 갈라지고, 수박 수영장에 한 발 한 발 들여놓을 때마다
"석, 서걱, 석, 석" 하고 부서지는(전 언제나 이 소리가 좋았어요!)
차갑고, 빨갛고, 달콤한 수박.
어쩌면 이렇게 감각적일까요, 보고만 있어도 시원하고 맛있어요.
음, 마지막 장면은 없었으면 좋았을걸 했지만 그건 저 혼자 생각이고
분명하게 현실과 환상을 정리해주는 그 장면이 좋다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올여름 가장 시원하고 귀여웠던 책,
그리고 내년 여름에도 분명 많이 보게 될 그런 그림책.
여름, 하면 수박 그리고
소나기, 아닌가요? :)
제가 사랑하는 작가, 사노 요코의 이 책을 빠뜨릴 순 없죠!
이 분은요, 우산을 무지 아끼는 아저씨입니다.
자신의 멋진 우산이 아까워서,
비오는 날이면 밖에 나가지 않거나 남의 우산을 빌려 쓰지요.
하지만 아저씨는 결국 우산을 펼 수밖에 없었답니다. 그 이유는...
"비가 내리면 또롱 또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 참방 참-방."
조그만 남자아이와 조그만 여자아이가 저 멀리로 갔는데도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저씨도 덩달아 소리내어 말했습니다.
"비가 내리면 또롱 또롱 또로롱
비가 내리면 참방 참방 참-방"
아저씨는 일어서서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까."
아저씨가 마침내 우산을 펼쳤습니다.
아저씨의 멋진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또롱 또롱 소리를 내고
발밑에서 참방 참방 소리가 나자
아저씨는 점점 더 신이 나서 빗속을 쑥쑥 걸어갑니다.
우산은 아주 멋들어지게 비에 젖어,
정말로 멋진 우산이 되었다는 멋진 그림책.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2판인데요,
처음에 읽었던 책은 이것과 좀 달랐어요.
"또로롱, 참방참방" 대신 "포로로롱, 핏짱짱"이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정말 이렇게 귀여운 소리가 날까? 비가 오면 좋겠다. 우산 들고 나가보게.'
하고 생각했어요.
이 아저씨처럼요.
여름이면, 우리는
휴가도 떠납니다.
또 소개하는 하야시 아키코의 그림책 :)
은지는 푹신이와 놀면서 자랐어요. 둘은 늘 함께였지요.
그런데 어느 날, 푹신이의 팔이 너무 낡아서 터져버렸어요.
"할머니에게 고쳐달라고 해야겠어."
은지와 푹신이는 함께 모래 언덕 마을에 사는 할머니네 집으로 떠났습니다.
둘이 자리에 앉기 전에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기가 우리 자리야!"
둘이 같이 기차를 타고, 도시락을 먹고, 그러다 푹신이는 또 꼬리를 다치고......
기차가 모래 언덕 마을에 도착하자,
둘은 할머니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모래 언덕을 구경하기로 해요.
그런데 신나게 놀다가 그만, 어찌어찌 푹신이는 모래에 파묻히기까지......;;
은지는 푹신이를 껴안고 물었습니다.
"푹신아, 괜찮아?"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푹신이는 작은 소리로 겨우 말했습니다.
"저기 봐, 바다가 보여."
은지의 말에 푹신이는 또 한 번,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하며 아까와 똑같이 말했습니다.
푹신이는 사실, 할머니가 만들어준 여우 인형이지만
은지와 함께 노는 친구, 은지에게 도시락을 사다주는 보호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읽는데 문득
푹신이가 마치 반려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장면을 보는데 조금 울컥했답니다.
며칠 전 하늘나라로 간 제 절친의 강아지 김치가 생각나서요.
여름날, 신나고 행복한 여행의 한때를 함께 보냈던 존재.
그래서 사진 속에 얼굴이 남아 있을 것만 같은 누군가.
가족이거나, 친구, 강아지일지도 모를 그 모두가
푹신이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곧 8월이 다 가고, 9월
그리고 이 사람이 찾아오겠지요.
반갑게 맞아주세요.
한 나그네가 기억을 잃은 채 베일리 씨의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다른 곳에는 여름이 지나 가을이 찾아오지만
베일리 씨네 집에만 가을이 오지 않지요.
나그네는 어느 날 문득 기억을 되찾고 서둘러 길을 떠나고
드디어 베일리 씨의 집에는 기다렸던 가을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베일리 씨 가족들은 모두 나그네와 함께 보냈던 계절,
여름이 가을로 천천히 바뀌어간 그때를
행복한 기억으로 추억할 것입니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를 한층 좋아하게 만든 그림책.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이렇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고 느꼈지요.
요즘 어린이들은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1, 2학년 통합교과 과목으로 배우는데
전 이게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져요.
아이들이 자연의 변화에서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을 다 빼앗아가는 것만 같아요.
너무 부정적인가요?
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 통합교과 과정 맞춤 그림책'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간되는
최근 그림책들을 볼 때마다 왠지 슬퍼요.
아이들에게 <나그네의 선물> 같은 책을 많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낙엽이나 단풍 말고는 가을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지만요. ;;
편지가 너무 길진 않았나요?
첫 편지를 보내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기꺼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신 분들도 반가웠습니다.
ㅅ님이 <순이와 어린 동생>을 장바구니에 넣었다는 소식이 특히 기뻤답니다. :)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가 웁니다.
응달 축대 밑에서 귀뚜라미는 점점 노마를 닮아 갑니다.
응달 축대 앞에서 점점 노마는 귀뚜라미를 닮아 갑니다.
그래서 노마는 점점
귀뚜라미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축대 밑에서 귀뚜라미는 지금 노마처럼 어서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어서어서 어서어서 하고 어서 돌아오라고 그럽니다.....
노마처럼, 귀뚜라미의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이 세상은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