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의 그림책 편지 #3_2015년 11월 29일
세 번째 편지가 너무 늦었지요?
야심차게 시작하더니 두 번 보내고 끝이냐,
나만 빼고 보낸 거 아니냐
그렇게 원망하셨던 분들, 기다려주셔서 고마웠어요.
출간되자마자 읽고서 감동받았던 <작은 배추>.
몇 달 만에 다시 꺼내어 읽고
드디어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언덕 위에 오도카니 선 감나무.
감나무 옆에서 작은 새싹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어쩌다 바람에 날려 배추밭 옆 감나무 아래에서 자라난 배추입니다.
"나는 누구일까?"
"배추란다. 꼬마 배추."
"안녕! 그런데 넌 누구야?"
"나는 감나무야."
"음, 나는 배추고"
"그래, 하하하. 아직 어린 애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걸 보니."
다른 배추들이 쑥쑥 자랄 때도 작은 배추는 여전히 작습니다.
모두 잘 자라 트럭에 실려 채소 가게에 갈 때도
배추는 '더 자라거라' 하고 감나무 옆에 혼자 남겨집니다.
그래서 작은 배추는 봄을 기다렸다가 꽃을 피우기로 했습니다.
"느긋하게 한숨 자. 봄이 오면 깨워 줄게."
감나무는 꾸벅꾸벅 조는 작은 배추 곁을
그림자처럼 지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봄이 왔습니다.
따스한 봄날, 언덕 위 감나무 곁으로 아른아른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습니다.
그 가운데에 작은 배추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엄마=감나무, 아이=작은 배추'로
또 누군가에겐 다른 의미로 읽히겠지요.
저는 둘 다 '나'인 것 같아요.
이제 겨울을 맞이하는 작은 배추의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때로는 누군가의 감나무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언덕에 버티고 서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고
얼고 녹고 그러면서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견디다보면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 되어 있겠지요?
그리고 그것을 발견해주는 감나무의 눈도 갖추게 되겠지요?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꾸역꾸역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제 주변 작은 배추들을 응원합니다!
이제, 작은 배추처럼 꿈을 꾸는 한 아이를 만나볼 차례입니다.
하세가와 슈헤이의 그림책 <홈런을 한 번도 쳐 보지 못한 너에게>
한 번도 홈런을 쳐보지 못한 루이는
이번 타석에서도 역시 땅볼, 심지어 병살타를 치고...
속상해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녁 무렵, 루이는 심부름을 나왔다가 우연히 센 형을 만납니다.
둘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원에 들러 타격 연습을 합니다.
센 형은 고교 야구선수이지만 루이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홈런을 한 번도 쳐보지 못한 것!
"연습 때는 휙휙 잘 넘어가는데, 정작 시합 때는 안 되더라.
나도 진짜 홈런 쳐 보고 싶다."
"맞아, 나도."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아주 커다란 놈으로....
홈런을 친 선수는 자기 힘으로 홈, 즉 집을 나갔다가
세계를 한 바퀴 빙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 거야.
오직 자신의 힘으로."
"형, 난 신이 선택하지 않았나 봐."
"무슨 소리.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려고? 꿈만 꾸다 말 거야?
해보지 않고서 어떻게 안다고. 이 형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데."
공원에 남아 타격 연습을 하는 센 형.
사실 센 형은 교통사고를 당해 재활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홈런을 쳐보고 싶다는 꿈을 언젠간 이루게 될까요?
이 책은 루이가 홈런을 치거나 센 형이 재활에 성공하는 대단한 결말을 보여주진 않아요.
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멋집니다.
(심지어 면지에는 주사위 놀이판도 있어요.)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그 발걸음은 담담하고도 힘찰 것입니다.
다른 꿈도 한번 들여다볼까요?
병원에 누워 있는 나는 그저 꿈을 꾸고 생각을 하고
가끔 꿈틀거릴 뿐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자신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의 다른 아이들로 향합니다.
그리고 차라리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으면, 하고 꿈을 꾸지요.
자유가 있다면, 사랑하는 엄마를 안아줄 수 있는 두 팔이 있다면
하고 꿈을 꾸지요.
꿈틀 꿈틀.
어젯밤에는 예쁜 각시에게
장가드는 꿈을 꾸었어.
아이들과 같이
오줌 누는 꿈도 꾸었고.
저기 멀리 어떤 나라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아이들이 굶어 죽는대.
꿈틀
또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서
집과 엄마를 잃고 우는 아이들이 많대.
꿈틀
가족을 잃은 아이는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배고픈 아이들, 더러운 물을 마시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저 꿈틀거릴 뿐이야.
내가 사람이 아니면 좋겠어.
저는 이 이야기를 몇 년 전 김준철 작가 개인전에서 처음 보았어요.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이라 이 책과는 조금 달랐지만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어떤 울림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책으로 나와주기를 기다렸습니다...(양철북, 고맙습니다!)
이 책에 대해서는 뭐라 설명드리기가 어려워요.
어떻게 설명해도 부족한 것 같고 제가 모자라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읽어보신다면, 작가의 진솔한 내면을 마주하고
제가 느꼈던 진실한 울림을 함께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한 사람을 따라가보겠습니다.
'비에도 지지 않'겠다고 말하며 서 있는 한 사람.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찬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한참을 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강가를 걸어 집으로, 논밭으로,
슬픔과 상실이 있는 곳으로, 아픔이 있는 곳으로
어디로든 뚜벅뚜벅 걸어가 바라보고, 도와주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해주는 사람.
이미 그러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향해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시 한번 다짐하는 사람.
이 시는 미야자와 겐지의 자화상 같은 시라고도 하고
겐지가 사이토 소지로라는 사람의 일생을 두고 쓴 시라고도 하는데요.
자료를 좀 더 찾다가 이런 기사를 읽었어요.
http://www.hankookilbo.com/v/b8ad883f9b9e4cf39a4fe85106b71591
"타인의 생각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윤리적인 축복입니다.
다른 사람을 상상함으로써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문학만이 가진 본연의 미덕입니다."
_아모스 오즈
누구를 두고 쓴 시인지 사실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그림책을 읽으면서 힘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네 권을 골랐어요.
타인의 생각을 상상하고, 타인의 꿈을 함께 꾸고, 응원하고, 공감하면서
함께 힘을 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