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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영 Jul 05. 2024

미영과 미미

 

나에게 첫 텔레비전은 전자제품이 아니라 가구와도 같았다. 우리 집에 처음으로 등장한 텔레비전은 외관은 나무로 마감이 되었고, 밑으로는 네 개의 다리가 지탱하고, 수상기 양 옆으로는 스피커가 있고, 브라운관 앞으로 문짝을 달아서 여닫을 수가 있었다. 꽤 살뜰한 아빠 덕분에 텔레비전 문이 자주 열리지 않았기에 더더욱 가구처럼 여겨졌다. 나는 부모님이 없는 시간을 틈타서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가곤 했다. 브라운관을 가린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브라운관에 상상 속 친구들을 그리고 이야기를 채우며 키들거렸다.    


이후 비교적 요즈음 텔레비전의 모습과 닮은 전자제품에 가까운 텔레비전과 함께했다. 안방극장이라는 표현처럼, 그 시절 텔레비전은 가족의 희로애락을 책임졌다. 아빠가 야구 중계에 빠졌듯, 엄마가 일일연속극에 빠졌듯, 나와 여동생은 만화 영화에 빠졌다.


‘미미’라는 친구가 있었다. 만화 영화 주인공처럼 어여쁜 외모에 색색이 고운 옷을 가진 소녀는 내 심장을 훔쳤다. 사실 미미는 사람이 아니라 종이인형이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쉽게 들리는 ‘미영’이라는 이름과는 한 끗 차이가 아닌 하늘과 땅 차이가 날 만큼의 무게감을 지닌 이름도 가졌다. 미미는 나의 일상을 오색찬란하게 수놓는 존재였다. 온종일 미미만 바라보아도 물리지가 않았다.     


이별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그 무렵 보따리장수처럼 커다란 가방에 옷을 담아 발품을 들여서 옷을 팔러 다녔던 아빠가 미미를 쏘아보았다. 그날따라 허탕을 치고 돌아온 아빠의 눈에는 종이인형이 작은 사치가 아니라 사치로 보였나 보다. 아빠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지 말라며 가위로 종이인형을 삭둑삭둑 자르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볼멘소리가, 울음이 차올랐지만 꿀꺽 삼켰다. 어둑어둑한 백열등 아래 아빠의 옆얼굴도 퍽 슬퍼 보였던 까닭이다.

     

슬픈 추억이라서 통째로 삼켰던 그 시간들이 밀려나온다. 빛바랜 시간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그 시절 만화 영화의 주인공들은 참 씩씩하고 밝았다. 심하게 전형적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순정(純情)에는 늘 마음이 동했다. 그리고 만화 영화에서 전하는 메시지는 소박하지만 참 힘이 났다. 이따금 주저앉고 싶은 순간에도 기지개를 켤 수 있었다.


마음의 기지개를 켜볼까나. 오래 전 그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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