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고난 잠보다. 잠꾸러기로 명명하고 싶지만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꾸러기는 스스러운 표현이다. 나는 언제 어디서든 까무룩 잠이 잘 든다. 대학 때는 베트남 여행을 갔다가 귀국하면서 탔던 공항버스에서 한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창문 밖으로 공항을 향하는 이정표가 보였다. 헉. 부끄러움에 귀밑까지 확 달아올랐다. 그래서 귀국이 아니라 출국하는 사람처럼 트렁크를 챙겨서 공항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다른 공항버스를 탔다. 또 지하철 을지로 순환선에서 졸다가 같은 역에서 다시 눈을 뜬 적도 있다.
늘 잠에 고파 있는 나를 각성시키는 두 가지가 있으니 커피와 술이었다. 사실 카페인에도 알코올에도 강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 효과가 남보다 갑절로 컸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술도 커피도 스톱했다. 술보다 커피가 더 무서웠다. 진한 커피를 마시고 벌어진 일이니 지레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나를 각성시켰던 낮의 술 같던 커피와 밤의 커피 같던 술을 끊으니 잠이 쏟아졌다. 마치 함박눈을 맞듯 장대비에 젖듯 잠에 취해 있었다.
이즈음 나와는 다른 이유로 커피를 마시기 힘들어진 교회 집사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카페에 가는 일이 힘들었다. 카페 주문대에서 선택 장애가 온 것처럼 버퍼링에 걸렸기 때문이다. 커피는 짜장면과도 같다. 중식점에서 짜장면을 제외하고 메뉴를 고르는 순간의 난감함이 존재한다. 뜨거운 음료에서 커피류를 제외하면 선택지가 확 줄고 대체할 차가운 음료들은 달디 달다.
석 달의 시간이 흐른 후, 하루에 딱 한 잔 커피를 마시고 있다. 커피의 맛도 향도 새삼 귀하게 여겨진다. 그 무엇보다도 커피의 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