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이른 아침, 나는 분당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어제 나의 병증을 가장 길게 지켜본 은호언니가 고맙게도 동행했다.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서 은호언니는 나에 대한 염려로 눈물을 훌쩍거렸다. 언니에게는 괜찮을 거라며 의연하게 견디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움츠러들었다. 치매라는 가족력이 가장 큰 이유였다. 치매로 10년을 넘게 앓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작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 아빠가 있기 때문이었다.
응급실에서는 나에게 환자복으로 환복하고 휠체어에 앉으라고 권했다. 나이가 지긋한 남자 직원이 휠체어에 탄 나를 병원 여기저기로 이동을 시켰다. 그렇게 혈액검사를 시작으로 몇 시간에 걸친 뇌파검사, MRI검사 등의 정밀 검사가 이어졌다. 마음도 몸도 고단한 하루였다.
며칠 후, 뇌신경센터에서 일대일로 마주한 신경과 의사는 응급실에서 소견을 보였던 일과성 완전 기억상실증로 최종 진단을 내렸다. 40대 연령대 여성에게서 발생할 수 있으며 재발 가능성은 적지만 있고 치매와 같은 가족력과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라진 어제의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볕이 들지 않는 그늘진 구석... 기억상실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낸 자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