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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Apr 11. 2020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 생일 그리고 나의 짧은 휴직 10일 전.

10일 전부터는 정말 D데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하루 하루 쌓이는 인사이트들을 차곡차곡 기록하겠다는 나의 야무진 꿈은 어디로 사라지고.


세시간 째 수학 학습지를 풀면서 징징거리고 있는 아이와 마주 앉아있자니 세시간 내내 나도 아무 일도 못했다. 애초에 평일에 조금씩 나눠 풀면 되는 학습지였는데 단 하루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이는 결국 주말에 몰아서 풀게 되었다. 생일 전까지 이 책을 끝내지 못하면 생일에 약속한 태블릿 선물을 받지 못하는게 함정인데, 아까는 징징대는 볼륨이 자꾸 높아져 "수학 푸는 것도 너에게 좋은 일이고 태블릿 받는 것도 너에게 좋은 일인데, 왜 학습지 해달라고 엄마가 부탁하고 그래야만 태블릿을 받는다고 엄마가 애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역정을 냈다.


똑같은 상황이 지난 주말에 있었다. 한 달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가, 이제 더는 못 기다려준다, 평일에 안하면 주말에 쌓인 거 다 해야 지나간다, 선언하며 이 상황이 시작되었다. 지난 주에는 심지어 울면서 평소 수면 시간보다 두 시간을 더 초과해서 졸면서 문제를 풀더니 '밀어놨다가 한꺼번에 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 같다'고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오늘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애들이 원래 그런 거지, 뭔가를 체득하는 건 한 번에 되기 어려운 일이지, 생각한다. 정말 내가 짜증이 나는 건 다만 '기다리며 같이 버텨주는' 시간동안 내 일을 아무것도 못 했다는 거다!


내일 하루의 주말이 더 남아있고, 내일은 뭔가 구조를 바꿔서라도 아이의 고군분투 시간동안 나도 나의 작은 성취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아, 허무해. 그래도 아이는 목표한 바를 (드디어, 가까스로) 달성하고, 상쾌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눕고 싶다가 싶다가 싶다가 침대에 눕는 순간의 행복을 이 엄마도 아주 잘 알지. 잘 자라. 내일은 조금만 더 일찍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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