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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혜 Jul 21. 2023

괜찮지 않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의 리콘   


연말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한 해가 막을 내릴 때즘이면 새해 목표를 떠올려 보곤 한다. 신년 목표라 하면 어딘가 거창해 보이지만 나에겐 한 해 동안 마음속에 붙들고 갈 나침반 같은 것이다. 삶의 방향성 또는 다짐 정도다. 그렇게 새해 목표를 정하며 자연스럽게 한 해를 돌아보고 나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어 좋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가만히 앉아 생각해 보니 요즘 내 마음이 어딘가 괜찮지 않아 보였다. 반박자 느린 사람들이 있다. 내가 그렇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판단하고 반응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 무례한 행동에도 뭐지? 하다 솔직히 이야기할 타이밍을 번번이 놓친다.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부담 주는 걸 싫어해 힘든 일도 혼자서 이고 지고 가는 편이다.


  작은 손해나 불편정도는 갈등을 만들기보다 이해하고 양보하며 넘기는 편이 낫다 여겨왔다. 좋게 보면 평화주의자, 나쁘게 보면 회피형 인간인 것이다. 그간 '괜찮다'는 말에 담기지 못한 '괜찮지 않은' 감정들이 고이고 고여 내 안에 깊은 웅덩이를 만들었고, 그 존재감을 알려온 것이다. 이 물을 퍼내야겠구나, 12월의 어느 날 나는 다짐했다. 


  그렇게 신년 목표는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습니다' 표현하기로 정했다. 처음부터 잘될 리 없다. 그간의 관성대로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다 말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불편한 마음이 목구멍을 뚫고 나오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땐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야지 마음속으로 연습했다. 때론 글로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 보기도 했다. 자전거 타기나 수영처럼 몸의 기술만 연습이 필요한 건 아니다. 마음도 훈련이 필요하다. 이제는 무례한 사람이나 상황을 만났을 때 망설임 없이 대처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괜찮지 않다, 말할 때 스스로 지키는 원칙이 있다. 절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화를 내거나 비난하면 상대의 방어기제를 자극해 자신을 변호하느라 객관적으로 본인의 행동을 돌아볼 기회를 놓친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해서 또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사려 깊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종종 무례를 범할 수 있다. 그땐 비난이 아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 너도 나한테 무례했으니 나도 너한테 상처를 줘도 돼,라는 생각은 싸움만 일으킬 뿐 절대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한다. 


  심리학에 '나 전달법(I-message, 아이 메시지)'이라는 것이 있다. 나를 주어로 놓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대화법이다. 특히 싸움이 발생하기 쉬운 서로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황에서 사용하면 좋다. 가령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너는 왜 맨날 늦니'라고 '너'를 주어로 놓고 말을 하면 상대방은 비난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본인이 잘못한 걸 알면서도 이런저런 변명을 하거나 그간 본인도 서운했지만 참았던 일들을 터트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 전달법'으로 이야기해 보면 '한두 번은 실수 일수 있지만 매번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인 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라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행동을 사과한다.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일어난 가장 좋은 변화는 사람과 행동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예전에는 나를 불쾌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을 좋지 않은 사람이라 규정하고 무조건 멀리 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례한 행동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고 나자 좋지 않은 감정을 담아두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사과의 썩은 부분이 작다면 도려내고 먹으면 되지 무조건 내다 버릴 필요는 없다. 사과가 맞닿은 부분은 쉬이 짓무른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 보면 짓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마음이다. 


  괜찮지 않을 때는 괜찮지 않습니다, 말해보자. 나의 마음 건강과 인간관계에도 이보다 좋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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