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마물고기 Aug 06. 2021

#26. 결국 즐기는 자가 이기는 법

-4등 해도괜찮아.

<오늘의 메뉴>

단호박 소고기 찜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4등 했어."

 "그럼 내일은 3등 하고, 그다음엔 2등 하고, 언젠가 1등 하면 되겠다."

 "아냐. 선생님이 1등은 안 좋은 거라 했어. 4등이 좋은 거라 했어."

 "아니야. 1등이 좋은 거야."


 무슨 마음으로 4등이 더 좋은 것이라 하셨을까. 그저 가벼운 아이의 말에 무거운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도쿄 올림픽을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다.


 "와. 높이뛰기가 이렇게 즐거운 종목이었어?"

이번 도쿄올림픽 높이뛰기 경기를 보며 남편에게 했던 말이다. 올림픽의 모든 종목의 선수들은 위대하지만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은 분명 존재한다. 보통 축구나 야구는 방송사에서 중복으로 중계하지만 동시간에 하는 경기들은 우리가 결과만 나중에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이번에 나는 '우상혁' 선수를 보며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가를 넘어 삶의 자세도 결국 이 선수처럼 한다면 현재의 인생이 좋은 쪽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중간에 집안일을 하다 잠시 경기를 놓쳤는데 그의 표정을 보며 금메달 확정인 줄 알았다.

뭐야. 잠시 못 본 사이 금메달 딴 거야?

그런데 2m 35로 25년 만에 한국 신기록을 세웠지만 4위에 머물러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다.

 

 아마 나였다면 5.6위도 아니고 아쉽게 4위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해 아쉽고 분하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몰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텔레비전 속에 우상혁 선수는 너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2 m39 높이를 실패하고는 "괜찮아"를 크게 외치는 부분도 너무 신선했다. 한 종목의 경기가 끝났지만 여운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그날 밤 잠이 들면서 결국 우상혁 선수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진다면 나 역시 더 행복할 것이며, 아이의 성장도 느긋하게 기다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가진 아이로 성장시키는 것보다 매사에 우상혁 선수와 같이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부모로서 더한 기쁨이 없을 것 같았다.

원래 선천적으로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인 건지, 이번 도쿄올림픽만 그저 단편적인 모습인 것인지는 몰라도 그를 즐겁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시킨 그의 부모의 평소 모습이 궁금해졌다.


  학창 시절에 공부도 결국 즐기는 친구는 따라잡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하는 나보다 결국은 즐겁게 만화책 보듯이 하던 친구를 졸업까지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육아휴직 중 어린아이가 잠든 틈에 새벽에 했던 공무원 공부는 정말 즐거웠다. 즐겁게 한 공부는 결국 결과도 좋았다. 하지만 결과보다 생각해보면 너무 즐거웠기에 결과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면접까지 다 본 후 최종 발표 전날은 그래도 합격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면접장을 가던 기차 안에서는 마냥 여행 가는 기분이었다.


 "아줌마가 이렇게 면접까지 본 것도 어디야. 나는 태어나서 공부가 즐거웠던 적은 처음이었어. 이 경험 만으로도 괜찮아.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중에 한 지인은 내가 돌아갈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도 즐겁게 편하게 한 것이라 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엔 그런 것과는 달랐다. 돌아갈 직장이 있든 없든,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공부는 뭔가 활력소가 되었다. 비록 문제집에 조그만 단원평가를 혼자 풀고 채점하는 순간도 희열이 느껴졌었다. '어제는 3개 틀렸는데 오늘은 2개만 틀렸네. ' 마치 게임을 하며 레벨을 올린 듯한 성취감이었다.

살아가며 지치고 지겹고 단조롭다 생각이 들면 그때 공부하던 순간을 가끔 떠올린다.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시 나는 지금의 '우상혁'선수와 같은 결과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매사에 우상혁 선수와 같은 즐거운 나로 즐기는 나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나의 선천적인 기질을 그러질 못했고 단조로운 내 일상도 문제였다. 앞으로 나는 우상혁 선수의 경기를 매체에서 중계를 해준다면 꼭 챙겨볼 것이다. 그냥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그의 모습을 보며 내 삶의 자세에 대해 점검도 하고 내 아이의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지만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선수생활을 한다면 그에게 좋은 결과도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날 화면에서 감히 메달을 딴 다른 세명의 선수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그를 보며 마음만은 그가 승리자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결과보다 네 마음이 중요하다. 네가 행복하고 즐거웠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단단하게 말해주는 부모가 되고 싶다. 욕심을 내어본다면 나는 삶에 어쩌다 마냥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가끔 오는 사람이지만, 아이만큼은 하는 일이 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전 04화 #25.미니멀 라이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