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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Sep 18. 2021

#30. 행복은 짧고 단순하다.

- "엄마. 나한테 왜 안 물어보고 날 낳은 거야?"

 

<오늘의 메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남'이 음식,

아이스 아메리카노

 

  남편이 일찍 잠들고, 그날따라 더 눈이 초롱초롱한 첫째와 거실에 앉아 있는데 둘째 임신 때문에 볼록한 내 배를 만지며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지금 까호(둘째 태명)에게 물어보고 세상에 나오게 하는 거야?"

  "뭐?"

너무나 예상도 못한 질문이라 할 말을 잃었다.

  "까호한테 '너 세상에 태어나고 싶니?' 묻고 지금 세상에 나오게 하는 거야?"

  "아니. 그런데 엄마도 헨리 할머니(친정엄마)가 안 물어보고 세상에 나오게 했어."

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모습으로 한껏 흥분해서 콧바람을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엄마 나한테도 안 묻고 마음대로 낳았잖아. 왜 그랬어?"


 거실의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리고 나는 순간 너무 놀라워 텔레비전을 끄고 아이를 온전히 마주했다.


  "너. 태어난 게 싫어? 엄마 아빠 가족으로 사는 게 지금 싫어?"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흡사 20대 입사 면접을 보러 가서 면접관의 대답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니라 하겠지.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나라는 코뿔소만의 일상을 포기하고 너한테 기꺼이 제공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응. 만약 엄마가 미리 물어봤다면 나는 하늘나라에게 '안 태어날 거예요. 다른 아기 찾아요.' 했을 거야."

누군가 뒤통수를 '쾅' 치는 기분이었다. 왜냐고 물어야 하는데 마음이 떨리고 덩달아 입술도 떨렸다. 두렵고 슬프고 절망적인 감정이 막 회오리 쳐서 안방에 자는 남편을 깨우고 싶었지만, 여섯 살 아이에게 내가 동요하고 있다고 보이기 싫었다.


  "우리 똥개가 왜 그렇게 생각할까? 엄마 아빠는 우리 가족으로 와줘서 너무 행복한데......"

  "세상엔 억지로 해야 할 일이 많아."

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출근도 안 해도 되는, 밥벌이의 지겨움으로부터 자유로운 네가 무슨 소리냐고.


  "무슨 일이 그렇게 귀찮을까."

  "유치원도 가야 하고, 글자도 배워야 하고. 진짜 억지로 하는 일이 너무 많아. 그러니깐 까호한테는 좀 물어보고 세상에 나오게 해. 지금이라도 호가 아니라고 하면 하늘나라에 돌려주고 와."


  묵직한 말을 나한테 던져놓고는 곧 10분 후에 코를 골며 자는 첫째를 보다 거실에 혼자 검색을 했다. '아동 우울증', '소아 우울증'. 지금 생각해보면 검색한 내 손가락이 오버했지만, 그날 밤은 너무 충격적이고,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부족했던 부모의 모습부터, 내가 감정적으로 화냈던 일 여러 일들이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화도 났다. 나도 인간인데.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그럼에도 우리 부부가 얘한테 안 한 건 뭐야. 내가 읽고 싶은 신간도 포기하고 재미없는 육아서적을 형광펜 칠하며 읽고 있는데.


  다음 날 아침 혹시 유치원이 가기 싫다면 하루 엄마랑 집에서 놀자. 그렇게 마음먹었는데 첫째는 날 심란하게 해두곤 야속하게 신나게 등원했다. 낮에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워낙 감수성이 예민하고 말하는 단어도 예사롭지 않으니 우리가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 녀석. 유춘기 인가." 귀엽다는 듯이 허허 웃으며 넘겼다.

완벽한 부모가 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세상에 태어난 것은 원망하지 않도록 키우는 것이 내 육아 목표였는데.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그날 하루는 이런 생각만 하다 아이 하원 시간이 왔다.


  "똥개야. 어제 엄마한테 세상에 나온 게 싫다고 했잖아. 오늘도 그래?"

  "음. 오늘은 안 그래. 오늘은 행복했어."

  "왜?"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왔고, 승범이랑 재밌게 놀았으니깐."

  "아. 그럼 그 마음이 매일 바뀌는 거야?"

  "응. 내일은 또 안 행복할 수도 있어. 근데 지금 엄마가 놀이터 갔다가 집에 가면 내일도 행복할 것 같아."


 여섯 살이 벌써부터 내게 협박(?)을 하다니. 너의 매일매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부모로서 기꺼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앞으로 많아질까. 눈앞이 아득해지기도 하고, 웃음도 났다. 주변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다들 귀엽다 웃었지만 부모인 나는 더 묵직한 책임감을 어깨 위에 올리는 기분이었다. 한 생명을 낳고 키우겠다는 결심과 과정이 결코 가벼운 일은 아니지만 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어렵고 난해한 일이었다.


 그날 밤 내가 많이 동요한 것을 들킨 모양이다. 부엌에서 글을 쓰는 내게 똥개가 말한다.

  "엄마. 냉장고 안에 젤리를 먹게 해 주면 지금 행복할 것 같아."

어쩌면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는 행복은 사실 지속 불가능하고, 단순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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