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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물고기 Sep 23. 2021

#31.불안해질까 불안합니다.

-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오늘의 메뉴>

오직 나만 생각한 아침부터 배달음식. 갈비찜 


  기질적으로 예민함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다.

성장할 때 엄마는 늘 나에게 "곰탱이"라고 불렀다. 추위도, 더위도 잘 모르고, 반찬을 먹어보고 짠지, 싱거운지 물으면 언제나 대답을 즉시 못했다. 아픔을 느끼는 감각도 둔해서 다리 깁스를 할 정도로 다치곤 며칠 누워만 있다 엄마가 엎고 병원에 갔다 더 늦었음 소아마비로 살 뻔했다는 4살 때 일화도 있다.

출산도 새벽에 진통이 올 때 사람들이 하늘이 노랗다고 했으니 이 정도는 아니겠지 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땐 무통주사도 못 맞을 만큼 자궁이 60% 넘게 열려 갔다.


  그렇다면 나는 예민함과 거리가 먼 세상 살기 편한 둔한 감각의 소유자겠지. 생각들 하겠지만 극강의 예민함으로 늘 불안함을 느낀다.

짠지, 싱거운지도 분명 내가 느끼는 맛은 있다.(정말 못 느낀다면 병원에 가야 한다.)

이 간단한 질문에도 내 대답에 따라 상대방이 어떤 마음일지. 내 대답으로 인한 대처가 어떻게 바뀌는 것인지 그 짧은 순간에 오만 쓸데없는 생각이 엉킨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에 엄마가 "이불이 덥지 않니?" 이 단순한 질문에도 아. 봄이라 내 침실 이불을 바꿔줄 모양이구나. 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으니, 엄마가 온 가족 이불을 한꺼번에 세탁하고 바꾸려면 힘드니 내가 좀 더 며칠 더 덮고 자자.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이 결국 표면적으로 "곰탱이"란 별명을 만들었다.


  다른 한쪽으로는 곰탱이라는 단어가 무척 좋았다. 쓸데없는 배려심과 예민함으로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에도 지장이 생기는 판에 둔하다, 곰탱이란 단어는 이상하게 날 안도하게 만들었다.

공무원이 임용이 되고 이 예민함은 곧 불안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원금이 오가는 업무와 더불어, 내가 민원인의 케이스를 매뉴얼에 잘못 적용 시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내가 업무적 과실을 책임지는 일은 전혀 두렵지 않았으나, 나의 순간의 판단으로 민원인의 인생이 달라지면 어쩌지. (한 동료는 네가 사람 인생을 바꾸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전혀 대단치 않으니 그딴 생각 버려라 조언한 적도 있었다.)

과도한 생각이 쌓여 나는 처리한 지원금도 가끔 생각이 나면 문서고를 뒤져 다시 계산해보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내가 처리한 지원금의 실수는 없었다.(아직 발견이 되지 않을 수도. 나는 나를 가장 못 믿는다.)

휴직 중에도 두세 번 예전 부서 동료에게 내가 처리한 일 중에 문제가 생긴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번도 없으니 더 이상 묻지 말라. 생기면 말해주겠다고 했다.


  예민함을 주제로 한 서적이 요즘 많은 것을 보면 나같이 불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뜻이겠지. 나도 효과가 있을까 유명하다는 책을 4-5권 읽어봤지만 예민함의 불편을 적은 부분에게 공감이 갈 뿐 해결책을 속 시원하게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휴직을 하면서 곧 복직을 해야 할 텐데 정신과 심리상담도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주변 지인이 다른 문제이긴 하나 정신과 상담을 여러 번 받아봤지만 우리처럼 약물이 아닌, 기본 기질적인 문제는 병원이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는 소리에 시도는 하지 않았다.


  예민함은 곧 배려심과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증거이니 그 분야로 잘 살려보라 말들 하지만, 밥벌이에서 감수성을 활용할 직종을 크게 많지 않거니와, 일상생활에 주는 불편함은 강점보다 더 큰 셈이니 결코 위로되지 않는다. 어릴 적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의 기분을 무척 신경 쓰며 살았다. 오늘 엄마의 기분이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침과 다르다면서 나의 그날 일과도 변경했다.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일단 숙제부터 하고 책가방을 먼저 챙겨뒀다. 그날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미리 척척 해두었다. 반면 남동생 꿀꿀이는 놀고, 먹고, 티브이보다 평소보다 한 3배는 더 화난 엄마에게 혼났다.

잠자리에 둘이 누워 내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지. 내가 오늘 엄마 기분 이상하다고 티브이 끄고 일기 써두라 했잖아."

그러면 꿀꿀이는 전혀 후회되지 않다는 듯이

"괜찮아. 아까 티브이 재미있었어. 어차피 일기 안 써서 안 억울해." 그러고는 코를 이내 드르렁 골았다.


  같은 뱃속에서 나와도 기질은 정반대였다. 것도 극과 극이었다. 나는 예민함의 극. 동생은 무던함의 극. 매체에서는 예민함을 즐기고 나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발전시키면 더 삶이 즐거워진다고 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해 기대를 하지 말고, 타인의 반응에 신경 쓰지 말라 조언했다. 하지만 그 문구는 형광펜으로 줄 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만 가능. 책을 덮으면 다시 나는 불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휴직 직전에 내분비과 교수님이 내 갑상선 수치상으로 충분히 그런 마음이 극으로 들 수는 있다고 갑상선 약을 잘 복용하면 좋아질 꺼라 위로하셨지만 지금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을 보면 갑상선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첫째 아이가 얼마 전 뜬금없이

"엄마. 나 다음에 태어날 땐 더 용감하고 씩씩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 그랬다.

"엄마는 덜 예민하게 태어나고 싶어."

"예민한 게 뭐야?"

"너랑 나 같은 사람들."

그런 실없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태생부터 나랑 함께 한 "예민"씨는 요즘 들어 치료될 수 없고, 헤어질 수 없는 나의 동반자란 생각이 들었다. 버릴 수 없는 나의 한 부분이라면 사는 동안 조금 덜 불편하게 관리해야 앞으로 내 인생이 좀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조금은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는 중이다.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미 나는 삼십 대를 넘어가고 있다.

수많은 서적과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나에게 맞는 방법을 고민했다.

일단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해 지기로 했고 그 감정을 생각이라는 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으로 내기로 했다. 가끔 상대방 기분에 거슬리는 말이 나오기도 해서 문제가 생기지만, 일단 생각을 줄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차츰 좋아질 것 같다.

불안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의심, 상대에 대한 과한 배려심, 쓸데없이 지나친 계획성에서 나오는 것 같다.


 요즘 내가 혼잣말로 반복하는 말들이 있다.

어쩌라고. 알게 뭐야. 뭐 어때. 네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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