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품 팔아 찾은 보석 같은 시골집
저희가 계약할게요
본격적으로 시골집을 알아보러 다닌 지 2개월 만에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짧은 시간에 살고 싶은 집을 찾은 것이었다. 주말마다 경기도 양평에서부터 충남 보령까지, 복층 양옥집에서부터 다 쓰러져가는 한옥까지, 묘지 옆에 있는 바닷가 집까지 정말 다양한 집을 봐왔지만 쏙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매번 집을 보고 나올 때면 아내와 나는 '쓰읍~'하면서 '아.. 아 고칠 게 많은데' 또는 '아.. 가격이 좀' 하면서 나오곤 했다. 뭔가 하나 결정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꼭 있었다.
매주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 시골로 간다는 기대를 안고 집을 보러 다닐 때는 마음이 들떠서 힘든 줄 몰랐는데 마음에 드는 집이 좀체 나타나지 않아 우리 부부는 점점 지쳐만 갔다. 아이를 한 주는 처갓집에 맡기고, 한 주는 친정에 맡기면서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니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스무 번째쯤 집을 보러 갈 때인가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우리 이번 주까지만 집 알아보고 좀 천천히 생각할까?"
아내도 지친 모양이었다. 사실 나 자신도 이렇게 단기간에 집을 구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보통 시골로 가는 걸 최소 6개월을 잡고 준비하는데 몇 년에 걸쳐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급작스럽게 준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여보 우리 시간을 좀 갖고 천천히 매물을 보자.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집을 구하는 게 사실 쉽지 않은 일이잖아."
"그렇지.. 우리도 한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집을 찾아봐야겠지?"
"그래, 최소 6개월은 걸릴 것 같애."
집도 땅도 주인이 따로 있다고 했던가?
우리가 생각하는 조건에,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에, 우리가 생각하는 상태의 집을 찾기란 좀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한 거지만 겪어보니 지치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연락해 둔 부동산을 끝으로 우리는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볼 집은 면소재지에 위치한 농가주택이었다. 세련된 복층 양옥집부터 다 쓰러져가는 농가주택을 봐왔던 터라 사진으로 봤을 땐 이만한 농가주택은 훌륭한 편이었다. 조금만 고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지도로 동네를 살펴보았다. 일단 위치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초등학교가 집에서 불과 도보로 3분 거리에 있었고, 어린이집이 차로 5분, 편의점 3분, 종합병원 10분, 대형마트도 15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조건이 대부분 맞아떨어지는 유일한 집이었다. 집을 보러 가면서 아내에게 지도 어플을 보여주면서 내가 말했다.
"여보, 이 동네 왠지 느낌이 괜찮아"
"정말? 왜?"
"우리가 생각했던 조건이 거의 맞아떨어져. 그리고 국도가 붙어 있어서 교통도 좋아."
"그래?"
"이거 봐봐. 초등학교가 집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데야."
"오 그건 너무 좋다. 어린이집도 근처에 있어?"
"응. 차로 한 5분 정도 거리?"
"우리 가족한테 딱이네"
당시 어린이집 다니고 있는 아이를 생각했을 때 최고의 입지 조건이었다. 시골에 초등학교는 좀 있어도 어린이집은 거의 없는데 집 근처에 어린이집이 있었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에게 안성맞춤인 집이었다. 게다가 마을 전체가 논 가운데 있어서 로드뷰로 봤을 때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너무 기대를 하고 가면 안 되는데' 하면서 속으로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누르면서 운전을 했다. 부동산 사장님이 알려준 주소를 찍고 마지막 집을 향해 갔다. 도착할 때쯤 마을 입구부터 펼쳐지는 풍경에 반했다. 알록달록 초등학교 건물이 우리를 반겼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에 마음이 트이는 것 같았다.
여긴가..? 내가 찾던 곳이...
차에서 내리니 부동산 사장님이 먼저 도착해서 집주인 내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8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는 허리가 굽었고 할머니는 인자해 보이셨다. 아무튼 가장 먼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집 앞의 풍경이었다. 탁 트인 논이 저 멀리 산자락까지 뻗어 있었고 그 끝에 우뚝 솟은 산자락이 웅장해 보였다. 마치 이 마을 전체가 산의 정기를 내려받고 있는 형상처럼 보였다.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께 짧게 인사를 하고 집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우선 집 구조가 특이했다. 건물 사이에 대문이 나 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한가운데 넓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을 중심으로 노부부가 사는 안채와 창고로 쓰이는 부속 건물 두 동이 있었다. 그러니까 마당을 중심으로 각각 분리된 세 채의 단층 건물이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마치 전통 한옥처럼 마당을 중심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있는 구조였다. 안채 주변으로 뒷마당과 옆마당도 있었다. 집터는 100평 정도였고 안채는 20평 남짓, 창고는 각각 8평 정도라고 했다. 안채의 실내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시골집이었다. 좁은 거실에 진한 나무색 기둥, 큰 방 2개, 작은 방 1개, 화장실 1개, 다용도실과 주방이 있었다. 주방이 큰 게 인상적이었다.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우선 사람이 살고 있으니 크게 고장 난 부분이 없다는 뜻이었고 천장을 봐도 비가 누수가 되거나 하는 흔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집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마당 있는 집을 갖고 싶었는데 건물에 둘러 쌓인 형태가 좋았다. 옛날에 내가 태어난 할아버지 집과도 비슷했다. 담으로 둘러싸인 집은 사생활을 지켜주고 안정감을 들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채에서 마당으로 나왔는데 아내가 주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할머니 저희가 계약할게요
아내는 할머니에게 "저희가 계약할게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에게 상의도 없이, '나중에 연락드릴게요'도 아닌 바로 "저희가 계약할게요"였다. 사실 나도 마음에 들었지만 아내의 결단력에 놀라고 말았다. 부동산 사장님도 덩달아 "오~ 마음에 드시는 거죠? 그러면 이 가격에 진행하시죠."
가격은 1억 500만 원. 단 한 푼도 깍지 못했다.
부동산에 올라온 가격이 1억 500만 원인데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한 푼의 네고도 없이 그대로 계약하기로 한 것이다. 보통 500만 원은 깎아주거나 네고를 하면 그 이상도 깎을 수 있는데 아내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그냥 그 가격 그대로 매매하게 되었다. 정찰제도 아니고 이거.. 허허
계약을 한다고 주인 분과 말하고 아내와 부동산으로 가는 길에 말했다.
"여보~ 나도 마음에 들긴 하는데 가격 네고는 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야 여보, 500만 원 때문에 미뤘다가 다른 사람한테 뺏기면 어떡해? 나 이 집 너무 마음에 들어"
"그래, 나도 너무 마음에 들어. 당장 계약하고 싶긴 해"
"저 할아버지, 할머니가 흔쾌히 깎아 줄 것 같지도 않아."
"바로 안 하면 다른 사람한테 뺏길 거 같았어. 여보 나 이 집에서 생각하는 거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여보 나도 너무 마음에 들어. 우리 이 집으로 하자.
우리는 그날 부동산에서 계약금을 입금했다. 마음은 이미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우리의 시골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구독을 하시면 연재되는 글을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 업데이트!)★
한 분 한 분의 구독이 글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slittlefo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