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춥고 핑계는 많다

상급반 수강 신청이 코앞

by 데이지

수영 상급반 수강 신청 공지가 떴다. 중급반에 있는 사람들이 우선등록 하는 기간이다.

7월부터 시작한 초급반은 새벽이어도 다닐 만했고, 새로운 걸 배운다는 사실에 설레었고, 제법 따라갈 만했다.

하지만 중급반은 다른 세계였다. 그놈의 체력이 문제였다. 초반에 25미터 왕복 4세트(물론 나는 여러 번 쉰다)를 하고 나면 기진맥진이다. 중간에 일어서서 걷는 민폐 수강생인데, B반으로 분류되니 또 자존심 상한다고 침울해하는 못난이다.


수영 배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나이와 체력은 속일 수 없는지라 힘들다. 6개월 차에 남들이 얘기하는 ‘수태기’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급반엔 등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난 여기까지인 것 같아. 잘 못해도 자유형-배영-평영까지 배웠잖아. 접영? 보기만 해도 겁나. 내 체력으론 못 할 것 같아.

- 지금도 추운데 1, 2월에 눈까지 내리면 새벽에 어떻게 가겠어. 무리야.

- 그리고, 3월엔 일정이 많잖아. 여행도 갈 계획이고. 그동안 백수가 너무 성실했어. 이제 좀 놀아.

- 아예 안 하겠다는 게 아니야. 꾸준히 자유수영을 하면 돼. 내게 수영 배우라고 권했던 Y 언니가 오후 시간에 같이 하재잖아.

이렇게 단단히 내 나름의 논리를 만들었다.


같은 반 또래 친구들이 물어도 확고했다. 그런데 한 친구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늘 백조같이 우아하게, 힘 빼고 수영하는 우리반 탑. 상급반 같이 올라가시죠?라고 묻길래, 저렇게 얘기했더니 “참, 핑계가 많으시네요.” 이러는 거다. 아니 젊은 친구가 말문을 닫게 하네….(나, 꼰대 맞네) 거참 자꾸 생각하게 만드네.


Y 언니가 생각났다. 전화해 보자. 언니라면 내가 고민하는 지점을 잘 알겠지. 언니도 조심스러운 모양이다.

“올 겨울에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 겨울이라 걱정이면 이번에 쉬었다가 다시 중급반에 등록(물론 그땐 추첨이 돼야 한다)하는 방법도 있고, 배우는 김에 상급반까지 한번 가보는 것도 좋아. 그런데 중요한 건 연습이야. 자유수영을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계속 고쳐나가는 거지.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이번 중급반에 새로 들어온 모씨(이름을 모르므로)가 떠오른다. 1월부터 시작해 초-중-상급반을 끝내고 다시 중급반에 들어왔다는. 아직도 발차기가 안 되고 자유형이 힘들다는. 우리반 최연장자 K 어르신도 생각난다. 요즘엔 결석이 잦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따라오시던.

내가 간과한 게 있다. 과정을 이수한다고 모두가 완벽하게 잘하는 건 아니다. 각자의 체력과 수준에 맞게 배우고 또 배울 뿐.

만일 이번에 쉰다면 언제 다시 배울 수 있을까. 내가 원할 때 운 좋게 추첨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나이는 들어가고 일정은 불투명하고 의지는 박약하고…. 그리고 우리 선생님이 차근차근 잘 가르쳐 줘서 좋은데,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다시 고민 중이다. 추운 날씨야 모두에게 똑같은 조건일 테고, 강습 때도 나가기 싫은데 자유수영을 성실하게 하겠다? 솔직히, 자신 없다.

3월에 여행 계획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 일정이 아니므로 최소한 결석하는 방향으로 조정 가능하다. 우리반 동갑 친구도 금요일 새벽에 수영하고 직장 갔다가 저녁 비행기 타고 여행 간다고 하지 않던가. 생각해 보니 핑계 맞다.

체력은 그나마 수영이라도 해서 조금 끌어올려진 건데,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할 이유가 있을까. 애초부터 9개월 과정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는 것 아닌가.

상급반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들이 엉성하기 짝이 없다.


마지막으로 선생님한테 물어볼까. 격려 한 스푼을 원하지만, 그동안의 발언들을 떠올렸을 때 원하지 않은 말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B반 친구 중 한 명이 진지하게 선생님께 물었더니 체력적으로 힘들긴 할 거라고 했단다.

나도 물어봐야 하나. 중급반 승급 때처럼 흔쾌히 “자유형 하실 수 있잖아요!” 할 것 같진 않은데, 객관적으로 얘기해 주는 선생님 말에 상처 입으려나?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일단 멈춤, 여기까지. 이렇게 명쾌했는데 자꾸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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