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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Oct 21. 2022

엄마의 모든 말, “보고 싶다”

Long goodbye 하기 위한 시간들

“할머니, 제가 누구일까요?”

“글쎄…. 허허”

“저번엔 알아보시더니 또 잊어버리셨네. ○○잖아요."

“보고 싶다.”

“저도요!”

손주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엄마는 얼른 “보고 싶다”로 마무리하시곤 했다. 언제나 적절한 그 한마디에 상대방은 울컥한다.

가끔 등장하는 영상통화 속 누군가는 왜 이렇게 만날 달라지는지 당신도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다. 자식들이 해외에 있으니 손주들도 자주 보기 힘들었다. 당신의 어렴풋한 기억 속 그 녀석들은 여전히 초등학생이니 영상 속 청년이 낯설 수밖에.


지금도 요양원에서 영상통화를 연결하면 엄마는 “보고 싶다”는 말밖에 못 하신다.  

그런데 얼마 전 통화에서 “엄마 표정이 밝아 좋네.” 그랬더니 엄마가 “너도 표정이 밝아 좋다.”라고 하셔서 뭉클했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말씀하시던 분이 따뜻하게 응답해 주신 것이다.

손주들이 아프다고 할 때도, 사위가 잠시 일을 그만뒀을 때도 엄마는 늘 “괜찮다, 크느라고 그렇단다…. 건강하면 된다, 잘 될 거다.”라고 위로해 주던 분이셨다. 이른 새벽, 가족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기도를 멈추지 않으신 분이었다. 엄마의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예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얼마 전, 근 석 달만에 엄마를 만나고 왔다. 추석 때도 비대면 면회는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멀찍이서 뵙기만 하는 게 싫어 영상통화로 대신했다. 딸들이 영 찾아오지 않아 많이 보고 싶으셨나 보다. 지난번 면회 땐 자꾸만 “나, 방에 들어가도 돼?”라고 말씀하셔서 엄마를 붙잡느라 애를 썼는데 이번엔 달랐다. 일어서려는 우리들에게 자꾸만 밥 먹고 가라고 하신다. “엄마, 우리도 식구들 밥해 먹이려면 가야 해요. 다음에 또 올게요.”라고 하는데, 엄마 얼굴에 섭섭한 표정이 가득하다. 늘 씩씩하게 엄마를 바라보던 나도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출입문까지 따라나서는 엄마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얼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언제까지 이렇게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 할까. 아니 에르노의 책에서 본 그 구절,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 대한 생각이 나와 같다고 느낀다.

여러 번, 요양원에서 데리고 나가 그녀만을 돌보고 싶다는 급작스러운 욕망, 그리고 곧 그럴 능력이 내게 없다는 깨달음. (사람들이 말하듯, <나로서는 달리 어쩔 수가 없었다.>라고는 해도, 어머니를 그곳에 놔뒀다는 죄책감.)
- 「한 여자」, 아니 에르노, 열린책들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고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엄마는 착한 치매 어르신답게 요양원에서 도움을 주는 분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빨래 개키기 같은 일도 부탁드리면 잘하신다고 한다. 워낙 부지런한 분이시니,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집과 다르다는 느낌은 여전하실 것이다. 그래서 잘 지내시다가도 집에 가겠다고 하시고, 오지 않는 영감님을 찾는다. 이사 와서 여기 주소를 모를 거라고, 그래서 영감이 못 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하신다. 영감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다음날 똑같이 찾으신다 한다. 아버지가 투병 중일 땐 식구 없는 불쌍한 할아버지라고 그러시더니, 눈을 감을 때까지 엄마를 챙기시려 했던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이 뒤늦게 전해진 걸까.


엄마가 잠을 설치시는 것도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그런 걸까. 당신이 어쩌다 낯선 이곳에 머물게 됐는지 생각이 많아지신 걸까. 요양원 대표가 전해준 말에 덩달아 내 생각도 많아진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주 찾아뵙는 일뿐이다. 자식들이 당신을 잊지 않고 있음을 보여드리는 수밖에 없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기 전, 많은 요양시설의 내부 사진을 보았다. 아무리 쾌적하다 해도, 병원처럼 생긴 1인용 침대가 서너 개 놓인 방은 낯설었다. 도저히 집 같지 않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친척들은 벌써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느냐고 비난 섞인 말을 하기도 하고, 가까이 살면 엄마같이 착한 치매환자 한두 시간 봐드리는 건 일도 아닐 것 같다고 했지만, 부질없는 말임을 안다. 불효자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들 속에서 나를 구원해 준 건 글쓰기였다. 엄마와 ‘long goodbye’ 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었다.

덕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시간들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예전의 엄마는 없지만, 마냥 슬프지만은 않게 엄마를 기억하고 싶다.


엄마가 어제 독감 예방 주사를 맞으셨다 한다. 컨디션은 어떠신지 영상통화를 해봐야겠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또 “보고 싶다”고 하실 것이다. 엄마가 으레 하시는 말씀이어도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안다.

“보고 싶다”가 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인 것을, 딸에게 전하는 당신의 사랑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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