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너랑 하루라도 함께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집과 바꾸겠어!”
정신과 의사 딕 존슨은 딸과 함께 살기 위해 시애틀에서 뉴욕으로 이사하기로 한다. ‘그깟 집, 손때가 묻은 물건들, 포기할 수 있어.’
그의 아내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엉덩이뼈 골절과 알츠하이머는 그녀의 마지막 삶을 황폐하게 했다. “끔찍한 시간들”이었고 “몇 년 전에 죽은 것과 다른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딕 존슨마저 치매에 걸린 것이다. 그는 두렵다. 홀로 남겨지거나 요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딸은 아버지에게 이색적인 제안을 한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죽는 장면들을 연출하고 장례식 풍경, 그리고 천국의 모습까지 담아 보자고. 딕 존슨은 흔쾌히 촬영에 동의한다. 시나리오에 따라 혼신의 연기를 한다. 영화를 만들 땐 딕 존슨이 죽는 게 ‘설정’이었는데, 머지않아 ‘현실’로 닥쳐온다.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는 착한 치매 환자 딕 존슨의 실제 이야기이다. 이렇게 귀여운 어르신이라니.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인생은 좋은 거야”라고 외치던 그에게도 치매는 두려운 현실이다. 유머러스하고 긍정적인 그도 병이 깊어갈수록 불안해한다. 딸이 어딘가로 가 버릴까 봐 그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더 이상 아빠가 아니라 동생이 됐다고, 딸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방해하고 있다고 흐느낀다. 이 땅에서 딸과 함께 사는 것이 천국이라고 했던 딕 존슨이 서서히 무너진다. 불안한 눈동자를 쳐다보기가 힘들다. 요양원에 처음 갔을 때 엄마도 그랬다.
퇴직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엄마를 돌보러 친정에 갔다. 요양등급을 받기 전이라 한번 가면 일주일 이상 머무르곤 했다. 어느 날, 딸이 사는 집에 들렀다가 가겠다고 인사드렸더니 아버지가 느닷없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는 딸밖에 모르냐?”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이렇게 자주 친정을 오가는데 아버지가 왜 이러시나 싶었다. 그래서 삐딱하게 대꾸했다.
“당연하지, 아빠. 내 자식인데. 갑자기 왜 이러신대….”
아마도 당신이 예상한 날보다 내가 일찍 떠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땐 좀 억울했다. 내 딴엔 부모님을 챙긴다고 챙겼는데 핀잔을 들었으니.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지가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것을.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지만 큰딸인 나를 많이 의지하셨다는 것을…. 표현이 서툰 아버지는 그렇게 딸의 오해를 샀고, 당신이 약해지고 있음을 엉뚱한 타박으로 드러냈다.
누구도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시리라고, 갑자기 말기암에 걸리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변에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해도 나는, 우리집 식구들은 안전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게 그런 일이 닥쳤다. 약간의 치매라고 생각한 엄마의 상태는 심각했고, 아버지는 참고 참으시다 말기암 진단을 받으셨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퇴직하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미성숙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그때의 절망과 괴로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삶과 죽음, 그리고 인생이란 게 허망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닥쳐올 현실일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빨리 엄마가 요양원에 가시게 될 줄은 몰랐다. 괴로웠다. 3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집과, 하루 종일 돌봄을 책임지는 요양원 중에 선택해야 하는 일이었다. 영문을 몰라 하는 엄마의 손을 놓고 요양원 문을 나선 그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을 했다.
엄마는 당신의 대부분을 잊어버렸지만 나는 엄마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엄마의 변화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힘들다, 괴롭다는 고백이 수두룩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울고 웃으며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긍정적이고 명랑한 엄마 모습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열여덟 편의 글이 담긴 <엄마에게 착한 치매가 찾아왔다>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지만 같은 상황에 닥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