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Oct 04. 2022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요양원 첫 면회

“어쩔 수 없잖아….”

생전 안 하던 내 잠꼬대 소리에 놀라 깼다. 꿈을 꾼 모양이다.

그즈음 난 헤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어지럽다 하시고 밥도 잘 못 드신다는 연락을 받아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엄마를 너무 일찍 요양원에 모신 건 아닌지, 백수인 내가 모셨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죄책감이 들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기에 그저 괴로웠다.

딸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를, 어린아이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치매 환자를 선뜻 맡겠다고 말할 수 없었던 건 엄마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엄마 집을 리모델링하느라 우리집에 모셨던 때, 내가 얼마나 지쳤는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몸이 좋지 않으시다는데도 난 요양원에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더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절감하며 요양원에서 더 이상 전화가 걸려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게다가 지난번에 영상통화할 때 엄마가 “나, 내일 가냐?” 이렇게 물으셔서 가슴이 철렁했다. 요양원 대표는 걱정 말라고, 보통 땐 그런 소리 하시지 않는다고 했지만 엄마의 속마음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요양원에서 보내온 엄마의 ‘특이사항’엔 돌아가신 아버지를 찾는 엄마의 모습이 가득했다.

“할아버지 언제 오냐고, 할아버지 기다려야 된다고 잠을 안 주무시려” 하셨고, “할아버지한테 가시겠다”고 하는가 하면, “결혼은 안 하셨다고 말씀하시지만 영감님께 전화해 달라”고 하시며 “할아버지를 계속 찾으신다”는 기록이 반복됐다.

어느 날엔가는 느닷없이 “시동생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하시며 문이 어디 있냐”고 물으신 것으로 보아 엄마에게도 가끔 떠오르는 사람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무슨 말씀인가를 중얼중얼 반복해서 하시기에 무슨 말씀인지 여쭤보면 쑥스러우신 듯 크게 웃으셨다”는 메모를 보니 중얼거리는 버릇은 여전하신 듯했다.

다행히 하루하루 시간이 가면서 엄마는 “프로그램도 재밌게 참여”하시고 “침상에서 티브이 보시고 잘 지내시게” 됐고, “잘 웃으시고 대답도 잘해주시고 식사도 간식도 잘 드신다”고 했다.   




엄마가 입소하자마자 코로나 때문에 면회가 전면 중단됐는데, 5월 가정의 달이라고 한시적으로 면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 이제 우리들은 각자 집으로 가야 해요. 엄만 여기서 지내세요. 자주 뵈러 올게요.”

“뭔 소리냐….”

두 달여 전, 그렇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했던 곳에서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동생은 요양원 대표랑 잠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엄마 앞에서 절대 약한 모습 보여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눈물은 전염된다. 나는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엄마가 오신다. 얼마나 달라지셨을까. 많이 야위셨을까.

“누굴까요?”

사무실로 들어서는 엄마에게 요양원 대표가 묻자 엄마가 답한다.

“동생들이네.”

엄마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는다.

다행히 엄마는 우리를 알아보셨다. 동생들이라고 표현하는 건, 안다는 얘기다.


면회는 허용했지만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1회용 장갑을 껴야 했다. 왜 그러는지 알 리 없는 엄마는 온 신경이 비닐장갑에 가 있다. 답답하다고 자꾸 벗으시려 해서 그렇지 않아도 잘 안 되는 대화가 툭툭 끊긴다.

딸들이 묻는 질문에 엄마는 짧게 대답한다.

“그래…. 응…. 그렇지….”  

엄마의 말투가 이랬던가. 낯설다.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래도 “엄마, 우리 자주 올까 어쩔까?” 하는 짓궂은 질문에 “자주 와!”라고 말씀해 주시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교회 권사님이셨던 엄마는 그 정신에도 <주기도문>은 잊지 않고 계셨다. 한번 외워 보시라 했더니 거의 정확하게 외우신다.

엄마, 하느님이 부르실 때까지 건강하게 지켜 달라고 매일 기도해.

“알았다.”


면회는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요양원에 들어오기 전 당신 두 발로 잘 걸을 수 있었던 분이 ‘워커’를 밀며 복도로 나가신다.

요양원에선 왜 저걸 쓰라고 할까?

“사실 어머니 같은 분이 모시기 힘들어요. 침대에서 어느새 내려와 이 방 저 방으로 가시려고 해요.”

요양원 대표는 낙상이 제일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가만히 계셨으면 하는 모양이다.

헌데 엄마는 호기심이 많은 분이라 가만히 계시지 않을 텐데….


엄마는 오늘도 “어르신~ 워커 쓰셔야죠. 아이고, 가만히 좀 계세요. 넘어지셔요….”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침대에만 계시지 말고 부지런히 이 방 저 방 돌아다니시길, 오래오래 두 발로 잘 걸으시길 바란다.  

엄마, 또 올 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