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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19. 2022

엄마, 미안해요..

엄마를 요양원에 모신 날

“(나) 어디 가냐?”

“엄마, 걱정 마세요. 내가 어련히 알아서 모시고 갈까.”

“그렇지.”


며칠 전, 은행에 같이 갔을 때 엄마는 오랜만에 콧바람을 쐬는 게 나쁘지 않으신 듯했다.

그날도 그저 함께 볼일 보러 가려니 생각하셨을까. 옷을 갈아입자고 하니까, 엄마가 이렇게 묻더니 몸을 맡기신다. 당신이 맘에 들어하는 멋쟁이 모자까지 권하니 좋아하신다. 되레 살짝 설레는 듯한 표정이 보여 마음이 찔린다. 나를 저리 믿으시는데….  


요양원에 모시기로 한 날. 나는 혹시나 빠진 물건이 없는지, 요양원에 제출해야 할 서류는 잘 챙겼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엄마가 뭐 하느냐고 수십 번 물을까 봐, 조용히 방 문을 잠그고 엄마 짐을 쌌다. 요양원에서 옷은 많이 가져올 필요 없다고 해서 늘 입던 평상복과 겉옷 몇 벌, 양말, 속옷 정도만 챙겼다. 스킨로션과 바디로션, 틀니 세척제. 늘 드시던 아리셉트와 비타민D, 유산균. 그리고 준비해 오라는 초등학생용 실내화가 다였다.   


집에서 요양원까지는 차로 20분. 가는 동안 이상하게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신다.  

보통 때 같으면 “어디 가냐?”는 소리를 열 번도 넘게 하셨을 텐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이 불편하다.  


엄마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요양원에선 어떻게 돌아서야 하나.

머릿속으로 그 상황을 그려보긴 했지만, 생각하기 싫었다. 막상 그날에 직면하니 막막했다.

엄마와 함께 요양원 출입구에 들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요양사와 복지사인 듯한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순식간에 엄마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어머, 멋쟁이 어르신이 오셨다!”

“곱기도 하셔라.”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어떡하지? 엄마랑 인사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서명해야 할 서류들을 검토하고 마무리하면서도 그 생각뿐이었다.

잠시 후 엄마가 사무실에 들어오셨다. 복지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엄마가 의자에 앉는다. 이제 얘기해야 한다.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온 가족이 총출동했지만, 악역을 맡은 사람은 나다. 내가 엄마에게 다가간다.


“엄마, 오빠랑 올케는 이제 캐나다로 돌아가야 해요. 저도 집으로 내려가야 하고요. 그리고 작은딸은 돈 벌러 가야지. 그러니 엄마, 여기 계세요. 자주 보러 올게요.”

“뭔 소리냐?”

당신만 두고 간다는 얘기에 엄마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엄마, 한번 안아보자.”

차례차례 엄마와 포옹하는데 엄마가 계속 중얼거린다.   

“뭔 소리냐?”

“엄마, 또 올게.”

“언제 오냐?”

그러자 요양사와 복지사가 엄마 팔을 붙잡고 우리들에게 어서 가라고 눈짓을 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헤어졌다. 내가 직장을 그만둔 지 만 2년이 지난 때였다.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는 말에 난 “더 늦기 전에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라고 했다. 늦깎이로 시작한 일을 14년간 했으니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말과 함께.

그러나 그 두 가지 바람은 병립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치매가 깊어져 가는 엄마에 이어 아버지마저 말기암 진단을 받게 되면서 두 분 다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당신의 의지와 온 힘을 다해 암과 싸웠지만, 엄마 먼저 보내고 가겠다는 당신의 다짐은 실현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이었을까. 엄마는 자꾸 당신 집에 간다는 말씀을 하셨다. 엄마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저~기 귀통(작다는 의미인 것 같다)만 한 데’가 있다 하셨다. 평생 살 부대끼고 살아온 배우자를 그저 ‘좋은 할아버지’라 하셨는데, ‘그분’이 안 보이니 당신도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요양원에선 면회가 어렵다고 했다. 설사 면회가 된다 해도 적응될 때까지 몇 주간은 만나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도 들었다.

요양원에 입소한 날도, 엄마가 계시는 방까지 들여다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원장 선생님께 사진을 부탁하니 침대에 앉아 창가를 쳐다보는 엄마 사진을 보내왔다. 일부러 조용히 뒷모습을 찍은 듯한데, 그 모습이 내내 아팠다.


엄마는 매일 보따리를 싸고 옷을 몇 벌씩 겹쳐 입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신다고 했다. 요양원에서 보내온 사진을 보니 스카프로 싼 옷 보퉁이를 들고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가 보인다. 보퉁이를 들고나가려다 선생님한테 들킨 모양이다. 멋쩍게 웃고 계신다.  


하루 종일 돌봄이 필요하지만, 엄마는 더없이 예쁜 치매 환자다. 성격이 급하고 말씀도 많은 당신 원래 성격보다 훨씬 부드러운 어르신이 되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잊어버리고,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고 하시지만 어느 땐 재치 있다.


난 가끔 엄마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엄마(내가 당신 딸이라고 생각하진 않으시지만 엄마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느끼지도 않으신다), 엄마는 늘 여든까지만 살면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떡하냐? 엄마 벌써 여든여섯이야.”

“뭔 소리여? 내가 팔십여섯이란 말이여?”

“응.”

“할 수 있간. 내 맘대로 안되지. 하나님이 불러야 가지.”

“하하!!”


난 엄마의 강인함을 믿는다. 한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이지만 천천히 적응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여는 건 더딘 분이지만 요양원 친구분들과도 잘 지내실 것이라는 걸 안다. 부디, 조금 남은 기억이라도 길게 붙잡고 계시길, 자식들이 면회 갔을 때 ‘아는 사람’이라고 반겨 주시길 바랄 뿐이다.

“엄마, 미안해요. 우리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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