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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Sep 13. 2022

어떤 요양원에 모셔야 할까?

사실상 선택할 수 없다

아버지가 몇 차례 고비를 넘기실 때, 나는 요양원을 검색했다.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현실을 사는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엄마 옆에 아버지가 안 계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 해야 했다. 하루 3시간 요양보호사가 오는 재가서비스로는 엄마를 온전히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인터넷)카페를 들락거리며 요양원에 관한 정보를 얻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이트에서 장기요양기관을 찾아봤다. 지역은 일단 두 군데로 좁혀 알아보기로 했다. 현재 엄마가 살고 계신 곳이나 내가 사는 곳. 그래야 동생이나 나, 한 사람이라도 급한 일이 생길 때 가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왕이면 단독 건물에 마당도 있어 엄마가 산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정원이 100명 이상인 요양원이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체크를 하고 이용가능한 기관을 검색해 보니 몇 개 나온다. 요양원의 평가등급도 중요하다고 하니 상세정보를 클릭한다. 헉! 대기자가 수백 명이다. 아니 이용가능 여부에서 ‘가능’을 클릭했는데 당장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다행히 내가 사는 지역의 요양원은 2명의 여유가 있다고 나온다. 수도권이 아니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십여 명의 대기자가 있다. 대기자가 있는데 정원은 비었다?  


슬슬 불안해진다. 정원이나 시설 규모로만 볼 게 아닌 것 같다. 어떤 글을 보니,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요양원도 좋다고 해서 몇몇 지역의 요양원도 리스트에 올렸다. 이제 지역 구분은 흐릿해졌다. 좋은 요양원에 모실 수만 있다면 가깝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좋다고 하는 요양원은 대기자가 어마어마했다. 일단 전화를 걸어 보기로 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이트 정보가 정확한지, 대기자로 올리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입소 시 준비물은 무엇인지 등등.


몇몇 기관을 제외하고 검색한 정보가 대체로 맞는 것 같았다.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정확한 입소 시기는 우리도 알 수 없다….”

대기자는 많지만 원장 면담 결과에 따라 바로 입소 가능하기도 하니 방문 일정을 잡으라는 곳도 있었지만 그런 곳은 내가 걸렀다. 사람을 가려 받겠다는 것 같아서, 투명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직 뭐 하나 결정된 게 없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슬픔을 추스르면서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엄마를 요양원에 모시려면 건강보험공단에 급여 변경 신청을 해야 한다. 재가급여에서 시설급여로. 서류가 처리되는 시간도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아버지의 부재는 엄마가 잠자리에 들 때 실감하게 된다. 이제 주무시라고, 같이 자자고 졸랐던 아버지가 없으니 당분간 내가 그 역할을 대신 해야 한다. 걱정 마시라고, 조금 이따가 엄마 옆에서 잘 거라고 엄마를 안심시킨다.

내가 옆에 눕자 엄마가 알은척을 한다. “혼자 자면 외로운디 잘 왔다.”(‘엄마, 내가 딸인 줄은 아는 거야?’ 갑자기 울컥 눈물이 밀려온다.)

코 고는 소리가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엄마가 나를 토닥이며 잠꼬대를 하신다.  

“잘 주무셨어? 잘 주무셨으면 됐어.”

‘아, 아버지인 줄 아셨구나.’ 엄마 옆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요양원에 대한 선택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가능하면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 일단 우리집과 멀리 않은 A요양원에 가보기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수도권에 있지 않을 뿐, 나름 시설 좋기로 유명한 요양원이라고 한다. 홈페이지 사진을 보니 여기다 싶었다. 널찍하고 마당도 잘 가꿔져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시설도 잘 갖춰져 있는 것 같고…. 얼마 전에 통화한 친구(요양보호사이기도 한)가 시설은 중요하지 않다고, 사람을 잘 봐야 한다고 했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니 요양원이 보인다. 코로나 상황이라 입구부터 통제한다. 온 가족이 함께 갔지만 내부는 2명만 둘러볼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일부 공용시설만. 공간은 널찍한데 어르신들은 보이지 않는다. 텅 빈 복도엔 휠체어만 놓여 있었다. 담당자는 솔직한 반응을 보였고(“처음 오시면 며칠간은 우시기도 하고 힘들어 하시죠….” 같은), 반드시 입소하도록 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게 오히려 괜찮아 보였다. 외따로이 격리돼 있는 듯한 스산함 때문에 다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잠정적으로 이곳으로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요양급여 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제 오빠 출국일을 감안해 요양원 입소일을 정하면 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구체적인 서류를 준비하느라 A요양원에 전화했다. 그런데 말이 자꾸 바뀐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면담했을 땐 치매 노인이라도 일반 어르신하고 같이 머무는 게 좋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 방 배치를 다시 해 자리가 없단다. 대신, 없다던 치매전담실엔 들어갈 수 있다며, 그곳이 더 좋을 거라고 한다. 불과 며칠 사이에 그렇게 움직인다? 어르신들이 환경 변화 싫어하시기 때문에 방은 어지간해선 바꾸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갑자기 그날 보았던 풍경이 떠오른다.

‘시설이 좋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오지 않는다면 하루 종일 방에 계실 텐데…. 그리고 참, 엄마는 시골 안 좋아하시는데. 당신을 멀리 떠나보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몇 달 전 읽은 책에도 30인 이하 요양원을 추천하지 않았던가? 그새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왕이면 좋은 시설에 모셔야지, 하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엄마 집 주변, 10~30명 미만 시설로 다시 검색했다. 요양원 대표가 어르신들의 상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한 규모가 좋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상가 건물에 있는 요양원도 괜찮다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다행히 동생의 인맥을 통해 B요양원과 연결됐다. 정원은 25명 내외. 문을 연 지 2년 남짓한 곳이라 평가결과는 반영돼 있지 않았다. 대표와 꽤 긴 시간 전화 통화를 하고 미팅 날짜를 잡았다. 오빠 내외와 동생이 다녀왔다. A요양원과 달리 대표의 확고한 의지가 보이 곳이라 했다. 장점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겐 차차선(?)쯤 되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B요양원에 입소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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