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Oct 11. 2022

적응되지 않는 요양원 시스템

할많하않

엄마를 면회하기 전에 요양원 대표와 길게 얘기했다. 전화로 할까 하다가, 만났을 때 제대로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한 터였다.

다른 건 몰라도 식욕촉진제는 쓰지 말아 달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대표 물러서지 않는다.

“아니, 그럼 식사를 못 하시는데 어떻게 해요? 그러다 쓰러지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요양원을 운영하기 전 십수 년간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일을 해왔다고 들었는데 이게 대표의 노하우일까. 내가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서는 대표의 장황한 말들을 잘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피를 잃고 딴 얘기를 듣게 된다.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이미 파악한 터라 이번엔 그렇게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피곤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약을 드릴 땐 저한테 미리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걸 어떻게 일일이 미리 말씀드려요. 급박할 때도 있는데….”

대표가 그렇게 얘기하거나 말거나, 엄마에게 약을 처방할 땐 반드시 보호자인 내게 미리 얘기해 달라고, 그리고 최소한으로만 처방해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나왔다.


엄마의 첫 번째 이상증세가 나타난 건 어지럼증이었다. 엄마가 침대에서 일어나 걷다가 어지럽다고 하시며 휘청 하셨다고 한다. 요양원에 입소한 지 한 달이 지난 때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며칠 뒤 영양제 링거도 부탁했는데, 그것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집에 계실 땐 병원에 가서 링거 한 병 맞고 오시면 괜찮으셨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싶었다.

 

문제는 ‘약’이었다. 나중에 요양비 세부 지출내역에 청구된 기타비용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엄마가 드시는 약은 치매약인 아리셉트와 비타민 D, 그리고 노인성 고혈압 약전부다. 원체 양약을 싫어하시기에 아프셔도 어지간하면 드시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한 달간 너무 많은 약을 드셨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처음 시작은 오줌소태 약이었다. 원래 집에 계실 때도 식사하기 전, 주무시기 전에 특히 소변을 자주 보러 가셨다. 당신이 정한 시각에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한다는 건 아시니까 화장실에 다녀오시는 건 일종의 준비 단계다. 밥이 늦어질수록 화장실에 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얘들이 왜 밥을 안 주지?’ 말은 하지 않아도 그런 마음인 듯 주방 쪽을 둘러보며 화장실에 다녀오시곤 했다. 더구나 화장실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곧 잊어버리시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변을 자주 보러 가신다고 요양원에서 오줌소태 약을 처방해 드린 모양이다. 새로운 증세가 아니라 평소에도 그러셨고 불안하니까 더욱 그러실 거라고 얘기했는데 흘려들었는지, 아니면 증상이 더 심해졌다고 판단했는지, 아무튼 나중에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열흘 후쯤 요양원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른 증상은 없는데 엄마가 자꾸 “어지러워, 어지러워….” 하신다고. 그날부터 엄마는 감기약을 드신다. 며칠 뒤에도 차도가 없자 대표가 다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링거 영양제를 부탁한 것이었다. 나중에 지출 내역을 보니 그날부터 엄마는 또 이비인후과 약을 드시게 된다. 그렇게 계속 약을 드시고 있는지 알 리 없는 나는,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사진 속 엄마 얼굴이 영 좋지 않아 요양원에 전화를 건다. 그랬더니 간호사를 바꿔 준다. 그렇지 않아도 촉탁의가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보호자와 상의하려 했다고. 그래서 굳이 정밀 검사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당뇨도 없고 혈압도 높지 않고 지병이 있는 분이 아니니 지켜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식욕촉진제를 드시게 한 모양이다. 이 역시 보호자 동의를 받은 바 없다.


식욕촉진제는 의료보험 적용도 안돼 약값이 10만 원이 넘는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는데도 요양원 대표는 항변한다. 그러다가 어르신 쓰러지신다고, 그렇게라도 드시게 해야 한다고….

물론 요양원은 요양원대로 나름의 매뉴얼이 있겠지만, 개개인의 성향과 상태를 살폈어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으론, 평소 약을 잘 안 드시던 엄마가 각종 약에 취해 더더욱 기력을 잃고 악순환에 빠진 것 같았다.  


또 하나, 엄마가 어지러운 이유가 혹시 치매 약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요양원에 입소하면서 달라진 건 아리셉트 용량뿐이다. 10mg에서 23mg으로 용량을 높인 게 엄마에게 무리가 된 건 아닐까.

병원에서 치매약을 처방받으면 1년에 한 번 설문 조사를 는데, 요양원 입소 직전엄마 상태는 거의 최저점다. 주치의는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왔다고 아리셉트 용량을 높였고, 엄마 상태를 관찰할 새도 없이 바로 요양원에 가시게 됐다. 아리셉트 부작용을 검색해 보니 어지럼증도 있다. 엄마가 앓고 나신 후 주치의와 상의해 아리셉트 용량을 기존 10mg으로 줄이기로 했다.


사실 엄마의 어지럼증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아리셉트 용량이 높아서인지, 오줌소태 약으로 시작된 각종 처방약 때문인지, 그 두 가지의 복합적인 이유 때문인지, 그저 앉았다 일어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곤 하는 어지럼증 때문지…. 아무튼 모든 약을 줄이고 끊으면서 엄마의 상태가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말할 수 없이 속상했다.




엄마가 아프시니 재가센터 담당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던 날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더 안 좋아지실 거예요.”

주기적으로 가정 방문을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얘기도 많이 나눈 사이였는데, 그녀가 마지막으로 내게 해 준 말이 그 말이라니.

‘좀 더 따뜻한 말을 해줄 수는 없었을까.’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 말일 거라고 애써 소화시켰다. 그런데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이게 좋지 않음의 시작인 걸까.


무엇보다 요양원 대표와 대화가 안 되는 게 문제였다. 워낙 많은 요구사항들이 있을 터이니 최대한 성가시게 하지 않는 보호자가 되려고 했는데, 그냥 ‘호구’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를 위해서도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아닌 건 아니라고 즉각적이고 단호하게 얘기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이렇게 무른 보호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엄마를 면회하고 와서 예전에 알아봤던 C요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도 대기자가 많아 1년쯤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1년 6개월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래도 대기자 명단에 올려 달라고 부탁하고 관련 서류를 접수했다. 다른 요양원에 다 오시면 적응하기 힘드실 거라고 잘 생각하라는데, 바로 입소할 수 없는 조건이니 감수하겠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다른 곳으로 모시고 싶은데 여건이 녹록지 않으니 플랜B인 셈이다. 처음 맞닥뜨린 요양원 시스템.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