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틀루이스 Jan 28. 2022

집을 잃어버린 느낌.

일상을 지내다 가끔씩 이런 기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추운 날, 집 밖에 서서 창문을 통해 집 안에 있는 낯선 사람들이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기분.


어쩔 때는 그 창문 안에 온 세상이 있는 것만 같게도 느껴집니다. 

저 자신만 집 밖으로 튕겨져 나온 기분이랄까요.


그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두들 잘 지내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결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요.)


오늘 그런 기분을 강하게 느껴서 글로 남기며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어렸을 때는 집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지 않았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그러고 다시금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도 ‘그 기분’을 느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은 그때는 그 기분을 느끼더라도 곧장 울면서 엄마에게 안겼고,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며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엄마는 안 계시고,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며 매달리기에는 제가 너무 샌님 같은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릴 적 그 기분을 느끼게 된 과정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싸우거나, 제가 혼이 나거나, 혼나는 것을 넘어 부모님의 분노의 희생양이 되어 폭행을 당하거나, 제 인격과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일을 당하거나, 혹은 제가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그 기분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상황은 그 기분을 지금처럼 오래 끌고 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의 저는 위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부모님께 달려갔기 때문이지요.


제게 있어 부모님은 ‘집 그 자체’였으니까요.


당시의 저는 자존심이랄 것도, 이상적인 가정에 대한 개념도, 독립적인 인격의 필요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집 밖으로 튕겨져 나와도 쉽게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10년, 20년, 3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저 자신을 이루는 갖가지의 이념, 가치, 습관, 삶의 방식을 갖춰오게 됐습니다.


물론 가족과 떨어져서 말이지요.




그리고 지금의 우리 가족을 보면, 질서도 없고, 평온도, 안락함도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서로가 불편해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서로 맞추려 하지만 낯설고, 진정으로 상대를 원하는 것도 아닌 눈치를 봐가면서 ‘내가 이렇게 해주는 게 나을 거 같으니까’ 행동하다가 결국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을 보며 저는 우울과 고통을 느낍니다.


우리 가정은 한때 어느 정도는 맞물리는 퍼즐이었는데, 지금은 모양도 그림도 뭉개져 도저히 맞추기가 불가능한 퍼즐이 된 느낌이랄까요. 

너무도 힘이 듭니다. 

현재 어디에도 제 집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10대와 20대 때 저는 집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거든요. 

아주 어릴 때의 우리 집은 집의 기능을 조금이나마 했었는데, 제가 20대가 되면서 폭탄이 터져 버렸거든요. 

폭탄을 앞에 두고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폭탄을 끌어안고 저 혼자 희생할 그런 용기는 제게 없었습니다.


밖에 나와 살면서, 우리 집에만 있었던 전통과 가치, 패턴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제가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을 우리 아버지도, 누나도 이따금씩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이랬던 것이 몇 년 됐습니다.

그래서 그사이 가족을 떠나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집을 잃어버린 기분을 위로하고 새로운 집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대학 동기들도 그렇고, 소모임 사람들도 그렇고 집이 만들어질 만한 기분이 나려 할 때쯤 모두들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있을 때는 좋은 기분이 들기는 했습니다.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우리들만의 집을 짓는 것 같았습니다. 

허나 우리가 지었던 것은 집이 아니라 텐트였던 것입니다. 시간이 되면 그들은 텐트를 접고 사라지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누구도 리스크를 감수하며 집을 지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실을 연인을 만났을 때 아주 절실히 깨달았지요.

연인을 만났을 때는 정말 집을 짓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상대도 미숙했거니와, 제가 집을 지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구보다 외로움이 많았던 저는 상대를 함께 집을 짓는 동료로 여기지 못하고, 제 외로움의 구멍을 매우는 재료로만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헌신도, 책임의식도 없이 제 즐거움과, 제 편안함과, 제 쾌락만 누리려 했습니다. 그렇게 제 연인들은 떠나갔던 것입니다.




이제 저는 혈연이란 이유로 이런 부족한 저를 받아준 저의 가족과 함께 다시 집을 세우는 것 말고는 선택이 없어 보입니다.


정말 힘듭니다. 많이 웁니다.


하지만, 내 가족과 같이 집을 짓다보면, 이렇게 배워나가면서 함께 아웅다웅하며 익숙해져 가면, 새로 질서를 세우고 안정궤도에 들어서서 누가 봐도 쓸만한 집을 세운다면,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집을 짓는 법을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저와 둘이 손을 잡고 집을 지을 새식구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당신이 그렇게 고통스러운데도 왜 집을 세우려 하는가?’하고 물으신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처럼 집 밖으로 튕겨져 나온 사람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요.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과 공황에 대한 새로운 시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