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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Jul 19. 2020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어떻게 해야 할까

구라치다 걸리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애인이 다른 상대와 술을 먹는 모습을 보거나, 게임을 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친구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아 집에 가봤더니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화를 내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화를 내지 못하더라도 분노가 차오르는 것, 아니면 상대의 거짓된 모습에 당혹스럽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경우는 일상의 여러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사람에 따라 때로는 가끔, 때로는 자주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경험상(저는 거짓되고, 과장되며, 이중적으로 말하는 것에 달인이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자신의 실제 행동이 아닌,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기부여 강의나 영상을 보면 단골로 나오는 멘트가 있습니다. 자신의 결심을 주위 사람들에게 공표하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뜻이나 목표를 공표하는 것은 말에 대한 ‘책임’이 생겨나기 때문에, 의지가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의무감으로 인하여 계획한 것들을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몸무게를 20kg을 줄인다던지, 영어단어를 1000개 외우는 일과 같은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의 뜻을 공표함으로 목표를 이룬 경우가 아니라, 밥 먹듯이 자신이 바라는 바를 마치 실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처럼 말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제는 ‘그 사람’이라 지칭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싫어하면서 하지 않는 것, 좋아하면서 자주 하는 것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고 다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봤더니 싫어한다는 일을 아주 잘 하고, 좋아한다는 일을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예로 한 친구를 새로 사귀었는데, 새로 사귄 친구가 자신은 타인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고, 자신도 명령조로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또한 자신은 타인을 칭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됐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지낼수록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서 이상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가 타인에게 권위적인 사람에게는 상냥하게 대하고, 오히려 그에게 친절하고 고분고분한 상대방에게는 짜증난 투로 말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또 그가 단 한 번도 진심을 담아 칭찬하는 모습일랑 본 적 없으며, 칭찬을 할 때는 주위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 할 때, 타인을 이용하여 주위를 자신에게서 환기시키려 할 때, 그렇게 타인으로부터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칭찬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그 사람이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이나 과장된 말을 습관처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고, 자기계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모습에 변화를 주고 싶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추가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실제로 하는 행동에 대해서가 아닌,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말했던 것뿐이라고요.


이 말에 집중해봅시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이란 말에 말이지요. 그 말은 어떻게 보면 아직 되지 않은 모습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현재 내 모습이 아닌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칭찬일랑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칭찬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에 새로 만난 친구에게 “나 칭찬 잘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명백한 거짓말 이지요. 하지만 상대방은 그의 과장된 말을(거짓말) 제 눈으로 제차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의 거짓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확인을 하는 순간, 믿었던 사람은 충격 또는 상처 또는 분노를 품게 되겠지요.



너도 나도 피해자?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피해는 한 쪽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규모와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피해는 발생합니다. 바로 ‘의무’의 감옥에 갇혀버리는 것이지요.      


실제 자신의 모습보다 훨씬 더 나은 모습을 자신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사람은 ‘타인 의식의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남을 과하게 신경 쓴다는 말이지요. 즉, 자신이 말한 과장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실제 자신의 습관, 또는 편하게 하던 행동들을 타인 앞에서 하지 못하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자의식보다 더 심하게 자신을 의식하고 자신의 행위에 포장지를 씌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입니다.      


만약에 타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아 여러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것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예시와 같이 공표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하며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에게)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변화하려는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행복을 위해서 성취를 이루려 하고, 그리고 그 성취를 이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동기부여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 공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 일상에 책임과 의무라는 무겁게 짓누르는 스트레스를 가져다준다면, 말과 마차의 위치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또한 만약에 공표하는 것으로서 동기부여를 얻어 성취를 일궈내어 쾌감을 맛보았다손 치더라도, 또 다른 일을 마주함에 있어 새로운 공표를 함으로서 스트레스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까? 아니면 스트레스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요? 

우선 자신의 현 주소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자신에게 진실해져야겠지요. 위의 예시를 끌어와 설명하자면, 자신은 남에게 명령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남에게 명령하는 사람에게 아무 말 못하고 아부한다는 것을 알아야겠지요. 


그리고 변하고자 하는 모습에 대한 말만,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그 모습을 직접 행동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지금 당장이요. 명령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회적으로 표현해보고, 권유해보고, 요청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실수도 해보고, 불편함도 감수 해봐야죠. 권위적인 사람의 말에 웃지 않으려 노력하고, 냉담하게 답변하며, 합당한 의견이 아닐 시 거절도 해보는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한 번에 되겠습니까. 불편함, 어색함, 분노, 손해 등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또, 그렇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글쎄요. 제가 그런 류의 사람이었어서, 반대의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고, 그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사람은 날씨 화창한 날, 쇼핑하러 백화점에 갔다가 평소 눈여겨보던 물건이 50%세일하여 샀는데, 이벤트까지 당첨되어 상품권도 추가로 받고 기분 좋게 백화점을 나서는 찰나 문 앞에서 인사하는 직원에게 자신도 같이 인사해줬다며 자신을 선한 사람이라 착각하는, 자신에 대해 무척이나 관대한 그런 사람이니까요.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Chris U.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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