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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이별

by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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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내 발걸음에 시선을 맞추며

조용히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톡… 톡…’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린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내 또래의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무엇이 그리 반가운지

입안 가득 함박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 사람 앞에서

나는 5초, 10초

그렇게 잠깐을 멈칫했다.


‘……’


기억을 할 수 없었다.


분명히 아는 얼굴인데…

그를 어디서 만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잠깐의 머뭇거림 뒤,

나는 그의 이름을 떠올렸고

고등학교 시절 꽤나 함께 어울렸던

친구란 사실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길에서 잠깐의 만남 이후

집으로 가는 내내

그 친구와의 추억을

되짚어 보았다.


하나하나 떠오르는

추억의 조각들,

그리고 퍼즐 맞추기.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이상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도

몇 번 만난 것 같긴 한데…’


그러나 틀림없이 있었다.


앞으로 몇 년간은

연락도, 만나지도 못하게 될

마지막 만남을 우리는

분명 나눴었다.


그저 언젠가

또 보게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그 마지막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을 뿐…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한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 이별은

항상 이런 식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

늘 갑작스레 찾아온다.

고로 무언가 아쉬움을 남기고

또 그리움을 만들어 낸다.


‘오늘이 이별인 줄 알았다면

더 많이 준비했을 텐데…’


‘지금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더 잘해 주었을 텐데…’



하지만, 매 순간 이별을

완벽히 준비하고 헤어진다면

이는 어떤 느낌일까.


그것은 아마 그것대로

너무 큰 고역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동안

겪어야 할 이별은

정말 숱하디숱할 만큼

많을 테니 말이다.



결국 삶은 이별의 반복이다.


우리는 쳇바퀴를 돌듯

이별하고 다시 이별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이것이

이별인지 아닌지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다시 마주하지 못할 얼굴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도

준비하지 못한 채 그렇게 헤어진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어쩌면 그것은 이별의 아픔을

더 크게 느낄 수 없도록

신이 베풀어 준 ‘작은 배려’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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