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연애를 시작한 친구 놈들은
오늘도 자기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 “야, 너희 목숨을 건 사랑 해 봤어?
내 사랑이 그래. 난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죽을 자신도 있어!”
▷ “겨우 목숨 하나 가지고?
나는 내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 내 모든 것을!”
▷ “야, 넌 어떤데?”
▶ “나…? 난 혼자잖아.”
▷ “아니, 연애했을 때 말이야.”
▶ “음… 목숨을 건 사랑?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랑?
그런 건 잘 몰라. 그냥 시원찮았어.”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는지
말 그대로 시원찮았던 내 대답에
친구들은 아예 나를 대화에서
제외시켜 버리고 말았다.
말할 상대가 없어진 나는
조용히 술집을 빠져나와
혼자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또 편의점에 들러
작은 캔맥주 하나를 구입한다.
네가 즐겨 먹던 바로 그 맥주였다.
그리고 하염없이 걷다 보니
내 발걸음은 어느새
너와 마지막으로 이별한 장소,
마포 대교 위에 서 있었다.
마포 대교 위에서 바라본
한밤중 한강의 모습은
그날과 다를 바 없이
참 아름다웠다.
깜깜한 밤하늘과
맞닿아 있는 강줄기는
마치 흐르지 않는 것처럼
조용히 멈추어 있었고,
나는 한동안 말없이
멈추어 있는 그 풍경을
내 눈에 담았다.
나까지 멈추어 버린
착각이 들 만큼
오늘 세상은 또 한 번
멈추어 있었다.
그래… 너는
나를 멈추는 사람이었다.
‘내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 사람…?’
넌 나에게 결코 그런 대단하고
거창한 사람이 아니었다.
너는 단지 나를 멈추는 사람이었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고,
화장실에 가지 않아도
대소변이 마렵지 않았다.
그만큼 너와 보내는 시간들은
내게 너무나 완벽한 순간들이라
나는 네 앞에서 멈출 수 있었다.
오늘 꼭 해야 할 일,
내일 꼭 해야 할 일,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저녁에 만날 친구들,
주말에 할 가족 모임,
내가 있어야 할 장소들…
네 앞에서 멈추어 버린 나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계획한 일이 틀어지고,
마음먹은 일이 어그러져도
난 너만 내 앞에 있어 주면
슬퍼할 감성도 화를 낼 이성도
그 어느 것도 느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행복했다.
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전부였어도
절대 아깝지 않은 시간들.
너 때문에 하지 못한
일들이 수두룩했어도
전혀 아쉽지 않은 마음들.
그냥 난 너 하나만
내 앞에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완벽한 순간 속에 너와 나.
그것이 너와 함께한
내 생애 최고의 하루하루였다.
……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넌 내게 목숨보다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고,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다.
너는 단지
나를 멈추는 사람일
뿐이었다.
너무나 완벽한 순간 속에,
나를 멈추어 주는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